47년 만의 대면, 이슬라마바드에서 시작된 미·이란 종전 협정

서조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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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달 전 수정 · 2026년 4월 11일 오후 11:21

발행: 2026년 4월 11일 오후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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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이란이 47년 만에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종전 협상을 시작했습니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 등 4가지 강경 조건을 내세운 반면, 미국은 이란의 고농축 우라늄 포기와 해협 무조건 개방을 요구하며 팽팽한 기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철통 보안 속 셔틀 회담 방식으로 진행되는 이 협상은 중동 평화의 분기점이 될 수 있을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인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다

미국과 이란이 47년 만에 최고위급 대표단을 마주 앉혔습니다.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의 세레나 호텔에서 한국시간 11일 밤 9시를 전후해 시작된 이번 종전 협상은, 지난 2월 이스라엘의 이란 군사작전 이후 처음으로 성사된 당사국 간 공식 회담입니다. 미국 측에는 제임스 데이비드 밴스 부통령이, 이란 측에는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국회의장이 각각 단장으로 참석했습니다. 파키스탄의 적극적인 중재 노력으로 간신히 성사된 이번 회담은, 중동 지역의 긴장 완화를 위한 결정적인 전환점이 될 수 있을지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협상장은 철통 같은 보안 속에 있습니다. 호텔 주변 도로는 완전히 봉쇄되었고, 기존 투숙객들은 모두 퇴실 조치를 받았습니다. 이슬라마바드 시내 곳곳에는 경찰과 군인 1만 명이 배치되어 삼엄한 경계를 펼치고 있는데요. 이런 초유의 보안 조치는 협상의 중대함과 함께, 지역 내 불안정한 정세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협상이 시작되기 직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호르무즈 해협의 기뢰 제거 작업이 한국, 중국, 일본 등 역내 국가들의 해상 안전을 위해 시작되었다고 밝히며 협상 국면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간접적으로 시사하기도 했습니다.

팽팽한 기싸움과 네 가지 ‘레드라인’

협상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양측은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습니다. 밴스 부통령은 이란이 성실히 협상에 임하지 않으면 강경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고, 이란의 갈리바프 의장은 즉각 맞대응하며 레바논 전선 휴전과 148조 원 규모의 해외 동결 자산 해제를 선행 조건으로 내세웠습니다. 더욱이 이란 협상단은 파키스탄 셰바즈 샤리프 총리에게 네 가지 ‘절대 양보 불가’ 조건, 이른바 레드라인을 전달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통제권 인정, 전쟁 피해 배상, 동결 자산 해제, 그리고 중동 지역 전역의 교전 중단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에 맞서 미국 측의 핵심 요구사항은 이란의 고농축 우라늄 처리 권한 포기와 호르무즈 해협의 조건 없는 재개방입니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 문제는 가장 첨예한 대립점으로 부상하고 있는데요. 미국은 무조건적인 개방을 원하는 반면, 이란은 해협 통행에 대한 통제권과 통행료 징수권을 인정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현재 오만만에는 선박 10여 척이 대기 중이며, 휴전 합의 이후로도 소수의 선박만이 해협을 통과했을 뿐입니다. 협상의 향배는 이렇게 상충되는 입장을 어떻게 조율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셔틀 회담 속의 전망과 과제

첫 회담은 양측이 직접 마주하지 않고 파키스탄 관리들이 중재하는 ‘셔틀 회담’ 방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과거 오만에서의 중재 방식과 유사하여 양측의 거부감을 줄이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협상 기간에 대해서는 하루 동안의 집중 논의에서부터 몇 주에 걸칠 것이라는 예상까지 엇갈리고 있습니다.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더라도, 이란의 핵 프로그램과 미국의 제재 해제 문제는 2015년 핵 합의(JCPOA) 이후 끊이지 않은 갈등의 뿌리인 만큼 단번에 해결하기는 어려운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한편, 협상장 밖의 변수들도 도처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레바논 내 친이란 무장단체 헤즈볼라에 대한 공격을 지속하고 있으며, 중국의 이란에 대한 방공 무기 지원 정황도 포착되고 있습니다. 이런 요소들은 협상 테이블에 앉은 양국의 입장을 더욱 경직시킬 수 있는 요인입니다. 수십 년 간 이어진 적대 관계를 한 번의 회담으로 뒤집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1979년 이후 단절된 외교 관계를 고려할 때, 양국 대표단이 동일한 장소에 모였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역사적인 첫걸음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