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년 만에 폐지 수순에 들어선 형법상 배임죄
기업 활동의 불확실성을 키워왔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던 형법상 배임죄가 72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질 전망입니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당정협의를 통해 배임죄를 폐지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으며, 이는 1953년 제정 이후 단 한 번도 개정되지 않은 조항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합니다.
정부는 배임죄의 ‘업무상 배임’에 대한 구성요건이 너무 모호하여 선량한 경영인의 판단 오류까지 처벌 영역으로 끌어들인다고 보았습니다. 실제로 한국의 배임죄 기소율은 일본의 30배를 넘어서는 등 과도하게 운영되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습니다. 경영계에서는 이를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범죄’에 비유하며 규제 완화를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던 상황입니다.
형벌 대신 과태료, 110개 경제형벌 대수술
배임죄 폐지와 더불어, 경제 활성화를 위해 과도하게 적용되던 110개 경제형벌 규정 역시 손질됩니다. 정부는 최저임금법, 근로기준법 등 각종 법률에 산재된 경미한 행정 의무 위반 사항에 대한 형사 처벌을 대폭 완화할 방침입니다. 예를 들어, 미용실이나 세탁소의 단순 상호 변경 신고 누락과 같은 사안에 대해 최대 징역 6개월을 부과하던 것을 과태료 부과로 전환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또한, 법 위반 발생 시 사업주에게 자동으로 책임이 돌아가던 양벌 규정도 완화됩니다. 상당한 주의 및 감독 의무를 다했음이 입증된 사업주에 대해서는 면책 규정을 마련해 형사 처벌을 피할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이는 선의의 사업주가 불필요한 전과 기록을 남기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로 풀이됩니다. 징역이나 벌금형 대신 시정명령, 과징금 등 행정적·금전적 제재를 우선 적용하는 것이 이번 개선안의 큰 줄기입니다.
처벌 공백 우려와 정치적 논란의 그림자
배임죄 폐지 결정은 재계의 환영을 받았지만, 시민단체와 법조계 일각에서는 심각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우려의 핵심은 총수 일가의 부당한 내부거래나 사익 추구 행위에 대한 처벌 공백이 생길 수 있다는 점입니다. 배임죄는 그동안 재벌 총수들의 편법 승계 시도나 일감 몰아주기와 같은 행위를 견제하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법무부는 회삿돈 사적 유용이나 영업비밀 유출 등 명백한 악의적 행위에 대해서는 별도 특별법 마련이나 개별법 내 구체적인 규정 신설을 통해 처벌 공백을 막겠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대체 입법의 구체적인 내용과 일정이 명확히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현재 진행 중인 배임 혐의 재판에 미칠 영향이 가장 큰 쟁점입니다.
형사소송법 원칙상 범죄가 폐지되면 기소된 사건은 면소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로 인해 현재 배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여러 고위 정치인 및 기업인들의 재판이 중단되거나 무죄로 종결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반면, 야당 측은 이번 폐지 움직임이 특정 정치인의 사법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한 ‘맞춤형 조치’가 아니냐는 비판을 제기하며 정치적 해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향후 입법 과정에서는 경영상 판단 존중과 이해관계자 보호라는 두 가치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가 관건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