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 밖에서도 울려 퍼진 고통
경기 광주의 한 병원에서 20대 간호사가 동료들의 괴롭힘으로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병실 안에서 간호사가 울부짖는 소리가 환자들에게까지 들렸을 정도로 상황은 심각했는데요. 일부 환자는 불편한 심기를 털어놓으며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환자의 신고를 계기로 사건의 실체가 외부에 알려졌고, 가해 의심자는 퇴사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핵심은 따로 있습니다. 지난해 퇴사한 강수빈 씨도 같은 병원에서 약 3년간 이른바 '태움'을 당한 끝에 지난달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환자의 신고가 없었다면 이런 비극의 연결고리는 여전히 감춰진 채로 남았을 겁니다.
신고 뒤에도 반복되는 미온적 조치
강수빈 씨는 퇴사 직후 노동청에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습니다. 조사 결과 가해 사실 일부가 인정되었지만, 병원은 가해자 3명 중 1명에게 훈계 처분만 내렸습니다. 나머지는 여전히 병원에 남아 근무하고 있었죠. 강 씨의 어머니 김인아 씨는 얼굴을 공개하며 딸의 억울함을 호소했는데, 가해자들이 같은 공간에 남아있다는 사실이 피해자를 더욱 괴롭혔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추가 제보에 따르면 선배가 바닥에 의료기구를 흩뿌리고 청소를 강요하거나, 인사 미흡을 이유로 폭언을 일삼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른바 '시선 태움'처럼 말 없이 째려보는 행동만으로도 정신적 고통이 극에 달했다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가해자들이 여전히 현장에 남아있는 상황에서 피해자는 두 번째 추락을 겪어야 했던 셈입니다.
뿌리 뽑으려면 바꿔야 할 것들
태움이 반복되는 데는 개인의 성격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병원이 인건비 절감을 위해 인력을 최소한으로 운영하면서 과중한 업무가 쌓이고, 이 과정에서 선배들이 후배에게 스트레스를 전이하는 구조가 자리 잡았습니다. 신입 간호사 2명 중 1명이 1년 내에 현장을 떠날 정도로 상황은 심각한데요.
이에 정부와 지자체가 잇따라 대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추미애 경기도지사는 도의료원 산하 6개 병원의 실태를 전면 점검하고, 마을노무사 지원을 확대하며 562명 규모의 지방노동감독관 조직을 구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도 직장 내 괴롭힘 신고센터 운영과 현장 근로감독을 강화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태움을 결코 정당화할 수 없는 폭력으로 규정하고 엄정 대응을 지시했습니다.
하지만 간호계는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간호사 1인당 담당 환자 수를 법제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OECD 평균보다 3배에 달하는 병상 수와 열악한 인력 배치가 바뀌지 않는 한, 비슷한 악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태움의 고리를 끊으려면 개인의 인성만 탓할 게 아니라 병원의 인력 구조와 관리 체계를 근본적으로 손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