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 불과 10분 거리에서, 104일의 침묵
제주 한림읍의 한 야자수 농장에서 실종자 장미란 씨가 시신으로 발견되면서 전국적인 충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장 씨는 지난 5월 12일 밤 숙소를 나선 뒤 연락이 두절되었고, 사흘 뒤 남자친구가 실종 신고를 했습니다. 그런데 신고 접수 불과 2시간 반 만에 담당 부 경장이 연락이 닿았다며 사건을 종결해 버렸습니다. 실제로는 통화 기록조차 없었고, 부 경장은 프로파일링 시스템에서 장 씨를 교통사고 사망자로 허위 기재한 뒤 관련 자료까지 삭제했습니다. 결국 장 씨는 숙소에서 도보로 10분이 채 안 되는 거리에서 104일 만에 발견되었고, 이 모든 시간이 허위 종결로 인해 사실상 수색이 이루어지지 못한 공백이었습니다. 104일의 수색 공백은 단순한 업무 부실이 아니라, 시스템의 허술한 틈을 이용한 의도적 조작이 만들어낸 비극입니다.
반복된 '셀프 종결'과 무너진 안전망
문제는 이번이 유일한 사례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부 경장은 60대 남성의 실종 신고에서도 똑같은 수법을 썼습니다. 유족에게 아버지가 무사하다고 거짓말을 하고 사건을 종결했으며, 51일 뒤에야 시신으로 돌아왔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부 경장은 지난해 3월부터 약 17개월간 298건의 실종 신고를 상부 보고 없이 혼자서 종결 처리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중 상당수가 성인 가출인 사건이었는데, 이는 소재와 안전만 확인되면 별도의 인계 절차 없이 해제가 가능한 제도적 맹점을 노린 것으로 보입니다. 경찰 내부에서조차 평소 성실하다는 평가를 받던 인물이 이런 행위를 저질렀다는 사실에 범행 동기는 더욱 미궁에 빠졌습니다. 약 17개월간 298건의 신고를 독단적으로 종결한 점은 개인의 일탈을 넘어, 조직적 감독과 통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뼈아픈 증거입니다.
전국으로 번진 불신과 제도적 쇄신 과제
제주의 참사가 알려지면서 전국 경찰이 발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인천경찰청은 2024년부터 올해 7월까지 해제 처리된 실종과 가출 사건 2만 건에 육박하는 물량을 전수 점검하고 있으며, 특히 성인 가출인 사건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정치권에서도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국민의힘 제주도당은 제주도정이 직접 컨트롤 타워가 되어 관계 기관을 통합한 비상대책 기구를 가동해야 한다고 촉구했고, 이재명 대통령도 국무회의에서 경찰 기강 해이를 질책하며 근본적인 경찰 개혁 방안 마련을 지시했습니다. 반면 일부 여성단체와 시민단체는 이런 부실 수사가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와 맞물릴 경우 약자의 권리가 더 위협받을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권한 확대만 앞서고 감독 체계는 뒤처진 상태에서,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마지막 방어선이 무너진 셈입니다.
물론 장 씨의 정확한 사망 경위는 아직 명확하지 않습니다. 경찰은 외상이나 범죄 흔적이 없다며 극단적 선택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으나, 일부 전문가는 낯선 장소의 특성상 타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부 경장은 구속된 상태에서도 여전히 혐의를 부인하고 있어, 프로파일러 투입과 포렌식 분석을 통해 진실 규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11월이면 인천 등 지역의 전수 점검 결과도 나올 예정인데, 그때까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확인되지 않은 괴담을 멈추고 제도의 허술한 고리를 하나씩 보완하는 일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