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개월 만에 1300원대로 돌아간 환율
원·달러 환율이 약 11개월 만에 1300원대로 내려앉았습니다. 20일 오전 9시 기준 환율은 1389.3원을 기록했는데요. 이는 지난해 9월 24일 이후 가장 낮은 수준입니다. 전날 종가가 1397.7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하락세가 꽤나 확실하게 자리를 잡은 흐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번 하락의 배경에는 수출 대기업들의 대규모 달러 매도 물량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법인세 중간 예납 기간을 맞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조기에 달러를 원화로 환전하면서 시장에 달러가 쏟아졌습니다. 이런 수급 불균형은 환율에 강한 하락 압력으로 작용했고, 달러 가치 자체가 약해지는 흐름과 맞물리며 더욱 속도를 냈습니다.
달러인덱스 역시 98.79까지 밀렸고, 미국 재무부의 국채 바이밍 확대 소식도 금리를 끌어내리며 달러 약세를 도왔습니다. 특히 30년물 국채 금리가 큰 폭으로 하락한 점은 원화 강세를 뒷받친 중요한 대외 요인이었습니다.
환율을 끌어내린 세 가지 힘
이번 환율 하락은 단순히 한두 가지 요인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복합적 결과물입니다. 우선 미국 경제 지표가 연준의 긴축 기조에 제동을 거는 모습입니다. 최근 발표된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와 생산자물가지수가 시장 예상치를 밑돌면서, 9월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상 기대감이 크게 약해졌습니다. 금리 상승 기대가 꺾이자 달러 자산에 대한 매력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달러 가치가 하락했습니다.
두 번째로는 일본 엔화의 움직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엔·달러 환율이 160엔에 근접하면서 일본 당국의 외환 개입 가능성이 시장에 본격적으로 논의되었습니다. 아시아 주요 통화권에서 달러 약세 심리가 확산되는 분위기는 원화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국내 시장 내에서는 수출 기업들의 네고 물량이 쏠림 현상을 빚었습니다. 법인세 예납을 앞두고 원화 자금이 필요했던 기업들이 일제히 달러를 매도하면서 원·달러 환율의 지지선이 뚫렸습니다. 이처럼 수급적 요인과 거시 경제적 요인이 겹치면서 환율은 자기 강화적 하락세를 보였습니다.
갈라진 시장 전망과 변수
환율이 낮아지자 시장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기업과 가계가 변동성 리스크에 대비해 안전자산을 확보하려는 수요가 몰리고 있습니다. 5대 시중은행의 달러 예금 잔액은 8월 18일 기준 약 758억 달러로, 한 달 만에 63억 달러 이상 급증했습니다. 환율이 내려간 지금이 오히려 추후 재상승에 대비해 달러를 쌓아두기 적당한 시점이라고 판단한 겁니다.
다만 환율의 추가 하락을 제한하는 힘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 증시에서 순매도세를 보이고 있어 원화 수요가 그만큼 줄어들고 있습니다. 또한 저가 매수세가 유입되면서 달러 가치가 일정 수준에서 지지받는 모습을 보이고 있죠.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향후 방향에 대한 시각이 갈립니다. KB증권 오재영 연구원은 이번 하락이 SK하이닉스 ADR 자금 유입 같은 일시적 이벤트의 영향이 크다고 보면서도, 수년간의 수급 불균형에도 불구하고 펀더멘털에 기반한 원·달러 환율이 1300원대를 유효하게 하락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실제로 3분기를 넘어서며 추가적인 하락 돌파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은행의 외환보유액은 7월 기준 4,279억 5천만 달러로 전월보다 소폭 증가했습니다. 이는 외환 스와프와 외평채 발행, 운용수익 등이 반영된 결과인데요. 당분간 외환 당국의 안정화 능력은 충분해 보이지만, 글로벌 금리 정책과 수출 기업들의 환전 패턴이 환율의 중기적 방향을 가르는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