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넘어 연대로, 한일의 새로운 도전
한국과 일본 경제계가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경제연대’를 선언했습니다. 제주에서 열린 제14회 한일 상공회의소 회장단 회의에서 양국은 단순한 협력을 넘어 미래를 함께 설계하는 연대와 공조에 합의했는데요.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은 “함께 미래를 설계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하며, 구체적인 실험적 협력 방안까지 제안했습니다. AI, 반도체, 에너지 같은 미래 산업 협력뿐 아니라, EU의 솅겐 조약처럼 여권 없이 왕래하는 방안, 에너지 공동 구매, 의료 시스템 공유 등 과감한 아이디어가 논의 테이블에 올랐습니다.
이번 회의는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중단되었다가 지난해 재개된 이후, 가장 적극적인 비전을 담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고바야시 켄 일본상의 회장도 저출산·고령화라는 공동의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민간 차원의 경험 공유가 필요하다며 화답했습니다. 양국 경제계가 마주한 글로벌 통상 환경의 급변과 첨단기술 경쟁, 구조적 인구 문제를 함께 헤쳐나가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순간이었습니다.
협력의 세 가지 축: 미래산업, 사회 문제, 인적 교류
협력 방안은 크게 세 가지 축으로 정리됩니다. 첫째는 미래 성장동력 확보입니다. AI, 반도체, 에너지 분야를 양국 경쟁력의 핵심으로 설정하고, 안정적인 투자 환경과 공급망을 공동으로 구축하기로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특히 피지컬 AI 협력이나 공동 멀티모달 AI 플랫폼 구축처럼 상호 강점을 살리는 협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이는 글로벌 경제 블록화 속에서 한일이 ‘룰 테이커’가 아닌 ‘룰 세터’로 발돋움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읽힙니다.
둘째는 저출산·고령화라는 뚜렷한 공통 과제에 대한 공동 대응입니다. 일본 측이 특히 적극적으로 의지를 표명한 부분인데요, 정책과 연구 경험을 공유해 지속 가능한 해결책을 함께 모색하기로 했습니다. 셋째는 문화와 관광을 포함한 인적 교류 확대입니다. 최근 직항노선 증가로 상호 방문이 늘고 있는 흐름에 발맞춰, 경제·관광·문화 전반의 교류 기반을 넓혀가기로 합의했습니다.
실험적 제안의 함의: 여권 없는 왕래에서 에너지 공동구매까지
가장 눈에 띄는 건 최태원 회장이 제안한 구체적이고 실험적인 협력 모델들입니다. 그중에서도 EU식 ‘솅겐 조약’과 같은 여권 없는 왕래 구상은 많은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는 과거 일본상의와도 논의했으나 진전이 없었던 이 안을 다시 꺼내들며, 관광 활성화와 국민 간 교류 증진을 위한 용기 있는 실험을 촉구했습니다. 이 제안은 단순한 편의성 차원을 넘어, 양국 관계의 질적 변화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에너지 공동 구매와 의료 시스템 공유 제안도 실질적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방안으로 주목받았습니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양국이 협력해 구매력을 높이면 가격 안정과 비용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고령화에 대응한 의료 시스템 공유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동시에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시너지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최 회장은 “아이디어를 직접 실험할 용기가 필요하다”며 구체적인 실행을 독려했습니다.
지역 차원의 교류와 지속 가능한 협력 구축
이번 회의에서는 광역 경제협력과 함께 지역 간 교류의 성과도 주목받았습니다. 박주봉 인천상의 회장은 일본 아오모리상의와 함께 ‘한일 지역상의 교류 우수사례’로 표창을 받았습니다. 인천상의는 고베, 이미즈 등 일본 지역상의와의 자매결연을 통해 경제 및 산업 교류 기반을 꾸준히 다져왔는데요, 이는 중앙 정부 차원의 논의를 보완하는 실질적인 협력의 모델이 되고 있습니다.
양국 전문가들은 한일이 협력하면 약 6조 달러 규모의 시장을 형성해 세계 4위 경제 블록이 될 수 있다고 전망합니다. 미국, 중국, EU에 맞서기 위해서는 상호보완적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인식이 경제계 전반에 자리잡고 있는 겁니다. 내년 일본 센다이에서 열릴 다음 회의까지, 이번에 제기된 다양한 구상들이 구체적인 실행 계획으로 어떻게 발전해나갈지가 새로운 관심사가 될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