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가 만든 착시
2026년 2분기 한국은행 자금순환 통계가 나왔습니다. 명목 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이 6월 말 81.1%로 10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는데요.
3월 말 85.3%에서 한 분기 만에 4.2%포인트 떨어진 겁니다. 정부는 2030년까지 80% 이하로 낮추겠다는 목표까지 내놨습니다.
하지만 이 숫자만 보고 안심하기는 이릅니다. 가계 부채 비율이 급락한 건 빚이 줄어서가 아니라 분모인 GDP가 이례적으로 커졌기 때문입니다. 1분기와 2분기 명목 GDP가 각각 17.1%, 26.4% 상승했는데, 반도체 수출 호조가 결정적이었습니다.
빚은 늘고 있다
실제 가계 빚은 오히려 늘었습니다. 총 가계 및 비영리단체 금융부채는 6월 말 2495조 원으로 3월 말보다 28조2000억 원 증가했습니다. 부채의 93.5%가 은행과 보험 등 금융기관 대출금이고, 금융자산 대비 부채 비율도 2.60배에서 2.78배로 올랐습니다.
한국은행 장정수 부총재는 부채 비율 하락에도 실질 상환 능력은 개선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소득 개선이 고르게 퍼지지 않았고, 부동산 가격 상승 기대가 여전해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는 겁니다. 정부부채 비율도 42%대로 내려갔지만, 이 역시 GDP가 커진 착시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기업은 웃고 가계는 쪼그라들고
반면 기업 쪽은 사상 최대 실적을 냈습니다. 2분기 비금융 법인기업의 순자금 운용 규모는 67조1000억 원으로 1분기보다 46조2000억 원 늘어 2009년 1분기 이후 최대 폭을 기록했습니다. 상장사 당기순이익도 111조 원에서 189조 원으로 뛰었는데, 삼성전자 등 반도체 기업의 순이익 확대가 주효했습니다.
가계는 반대입니다. 가계와 비영리단체의 순자금 운용액은 60조7000억 원으로 1분기보다 18조5000억 원 줄었습니다. 소득이 줄고 주택 취득이 늘어난 탓입니다.
단기 예금은 33조6000억 원, 장기 예금은 5조4000억 원 감소한 반면, 주식과 투자펀드 지분은 사상 최대를 기록해 머니무브가 뚜렷해졌습니다.
결국 지표상으로는 가계부채 비율이 개선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반도체 호황이 만든 착시에 가깝습니다. 빚 부담은 여전하고 소득 양극화는 심화되는 가운데, 자금이 부동산과 주식으로 쏠리는 흐름이 이어질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