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난 강바닥에서 벌어진 파티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다뉴브강 수위가 사상 최저로 떨어졌습니다. 2018년에 기록했던 종전 최저 수위보다도 23cm나 낮은 10cm 안팎까지 내려가면서, 머르기트 다리 아래 강바닥이 훤히 드러났는데요. 이곳에서 DJ가 클럽 음악을 틀고 사람들이 춤을 추는 즉석 팝업 파티가 열린 것입니다. 영상이 SNS에 퍼지자 의견은 극명하게 갈렸습니다. 색다른 공간을 활용한 멋진 경험이라는 반응이 있는 반면, 유로뉴스는 이를 침몰하는 타이타닉호에서 연주하는 악단에 비유하며 기후 위기 앞에서의 무딘 감각을 지적했습니다.
사실 이번 가뭄으로 드러난 것이 파티 공간뿐은 아닙니다. 불가리아에서는 서기 328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세운 고대 로마 교량의 기초가, 세르비아에서는 1944년 나치 독일군이 침몰시킨 군함들이 수면 위로 올라왔습니다. 고고학적으로는 귀중한 기회이지만, 이는 근본적으로 유럽의 수자원 위기가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신호입니다.
유럽 전역을 짓누르는 폭염과 가뭄
기록적인 폭염은 헝가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프랑스에서는 전국 하천의 43%가 말라붙었고, 루아르강 수량은 한 달 만에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옥수수 수확량이 사상 최저를 기록할 전망이며, 축산 농가의 70~80%는 목초지 소멸로 사료 부족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일부 도시에서는 지반이 약해져 시청과 주택에 균열이 가는 피해까지 나타났습니다.
에너지 생산 체계도 흔들리고 있습니다. 강물 수위가 낮아지고 수온이 상승하면서 원전과 화력발전소의 냉각수 확보가 어려워졌는데요. 헝가리 파크스 원전은 가동 44년 만에 처음으로 멈췄고, 프랑스와 루마니아의 원전들도 줄줄이 출력을 낮추거나 중단했습니다. 수출국인 노르웨이의 저수지 수위마저 30년 만에 최저로 떨어지면서, 유럽 전력시장 전체의 완충 능력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일식까지 겹친 전력망 위기
이런 상황에서 8월 12일 유럽 상공에 일식이 예고되면서 전력망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스페인 북부와 포르투갈에서는 개기일식이, 영국과 프랑스 등에서는 태양의 90%가 가려지는 부분일식이 관측될 예정인데요. 프랑스 전력회사 RTE는 일식 정점 시간대에 유럽 전역에서 최대 9.3GW의 전력 공급이 사라질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이는 원전 9기가 동시에 멈추는 것과 맞먹는 규모입니다.
스페인 전력망 운영사 역시 태양광 발전량이 최대 5GW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는데, 이는 해당국 평균 전력 수요의 13%에 해당합니다. 원자력과 화력, 수력에 이어 태양광까지 한꺼번에 발전량을 줄이면서 유럽은 주요 전력원이 기후 위기와 천문 현상으로 동시에 타격을 입는 이례적인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자연재해와 천문 현상이 인위적으로 겹친 건 아닙니다. 하지만 기후 위기가 전력 시스템의 취약성을 이렇게까지 드러내는 것은 분명 이례적인 일입니다. 유럽이 이중 삼중의 위기를 어떻게 넘어설지, 주목할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