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만의 약가 대개혁
내년부터 희귀질환 환자들이 신약을 훨씬 빨리 접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됩니다.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통해 희귀질환 치료제의 건강보험 급여 적용 기간을 현행 최대 240일에서 100일 이내로 단축하는 방안을 확정했습니다. 이는 환자들이 고가의 신속 치료를 기다리던 기간을 절반 이상 줄이는 획기적인 변화입니다.
이 같은 개편의 재원 마련을 위해 정부는 2012년 이후 변함없던 제네릭 의약품 가격 체계를 개편합니다. 오리지널 의약품 대비 53.55% 수준이던 제네릭 약가를 40%대로 하향 조정하는데요, 일본과 프랑스 등 선진국 수준으로 맞추기 위한 조치입니다. 이미 등재된 약품도 3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조정될 예정입니다.
코리아 패싱에 대응하는 유연계약제
한국은 신약이 허가된 후 건강보험에 등재되기까지 평균 46개월이 걸려 OECD 국가 중 가장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나라입니다. 이런 비효율적 시스템 때문에 글로벌 제약사들이 한국 시장 진출을 미루는 '코리아 패싱' 현상이 지속되어 왔죠.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약가 유연계약제'를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이 제도는 혁신 신약의 가치를 더 유연하게 평가해 약가를 결정하는 방식입니다. 공식 고시가격은 국제 수준에 맞추되, 실제 병원과 약국이 지불하는 실거래가격은 현 수준으로 유지하는 이중가격제 방식도 검토 중입니다. 2028년부터는 신속등재-후평가 시스템을 도입해 실제 진료 데이터를 바탕으로 약가를 조정하는 선진형 모델도 도입될 예정입니다.
제네릭 시장의 구조 개편
제네릭 약가 인하는 단순한 가격 조정을 넘어 시장 구조 개혁의 의미를 지닙니다. 국내 제약 산업은 완제의약품 생산액 10억원 미만 소형 업체 비중이 31.3%에 달할 정도로 영세하고, 복제약만 생산하는 중소업체가 많습니다. 최근 5년간 국내에서 개발된 신약은 240개 중 13개에 불과해 혁신 역량이 취약한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죠.
정부는 이번 개편으로 복제약 품목 난립과 비가격 경쟁을 해소하려 합니다. 동일 성분 의약품 11번째 등재 시부터 약가 인하 폭을 강화하고, 10개 이상 제품이 등재되면 1년 후 11번째 제품 가격으로 일괄 조정하는 등 엄격한 관리를 도입합니다. 대신 원료 직접 생산, 국산 원료 사용, 필수의약품 공급 등 정책적 가치가 높은 제네릭에는 최대 10년까지 가산을 제공하는 차별적 보상 체계를 마련했습니다.
업계의 반응과 향후 과제
제약바이오업계는 이번 개편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고 있습니다.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한 업계 관계자들은 "약가 산정기준 하향이 기업의 R&D 투자와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제네릭 약가 인하로 연간 최대 1조원 안팎의 매출 감소가 예상되며, 이는 국내 제약사들의 연구개발 재원 고갈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주된 우려입니다.
반면 글로벌 제약사들은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입니다. 외자사 관계자는 "코리아 패싱 완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를 표시했습니다. 정부는 12월 중 추가 의견 수렴을 거쳐 내년 1분기부터 순차적으로 시행할 계획입니다. 이번 약가 제도 개편이 환자들의 치료 접근성 향상과 제약 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