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등급 줄줄이 강등…구조조정 '실행 단계'
2026년 상반기 국내 주요 석유화학 기업 14곳 가운데 신용등급이 상향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여천NCC가 A-에서 BBB+로, SK어드밴스드도 BBB+에서 BBB로 강등됐으며, 등급이 유지된 기업 가운데도 전망이 '부정적'으로 하향된 곳을 포함해 총 9개사가 하향 위험권에 들어갔습니다. 한국 석유화학 산업이 50년간 추구해 온 양적 성장의 시대가 사실상 막을 내린 것입니다.
원인도 뚜렷합니다. 미국과 중동은 저렴한 에탄가스(ECC)를, 중국은 석탄크래커(CTO)를 기반으로 원가 경쟁력을 확보한 반면, 한국은 나프타분해시설(NCC)이라는 상대적으로 불리한 원료 구조를 안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최대 수요처였던 중국의 자급률 급등과 대규모 증설까지 겹치면서 범용 제품 중심의 수익성이 빠르게 악화됐습니다.
여수 1호 프로젝트…설비 통합과 고용 위기 대응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7월 22일 여천NCC, 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 DL케미칼 4개사가 제출한 '여수 1호 사업재편안'을 최종 승인했습니다. 롯데케미칼은 연산 123만 톤 규모의 여수 NCC와 기초소재 사업을 물적분할해 여천NCC와 합병하는 방식으로 통합법인에 참여하고,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은 각각 2,725억 원을 출자해 PE 등 다운스트림 자산을 현물 출자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세 회사가 신설법인 지분을 3분의 1씩 동등하게 보유하는 공동 지배 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여천NCC 2공장(92만 톤)과 3공장(47만 톤) 등 총 139만 톤의 설비는 3년 이상 가동이 중단됩니다. 대산 1호 프로젝트의 110만 톤과 합치면 국내 NCC 감축 규모는 249만 톤에 달하며, 정부 목표치인 270만370만 톤의 6792% 수준입니다. 정부는 최대 4,500억 원의 신규 자금과 채무 상환 유예, 세제 지원 등 7,000억 원 규모의 지원 패키지를 투입하기로 했습니다.
여수시는 설비 감축에 따른 협력업체 타격과 지역경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고용노동부에 '고용위기지역' 지정을 신청했습니다. 롯데케미칼 노사도 23일 여수공장에서 '노사 화합 선언식'을 열고 고용 안정과 산업 안전 강화에 합의했습니다.
범용 줄이고 의료용 키운다…고부가가치 전환이 관건
이번 재편의 진짜 시험대는 '무엇을 만들 것인가'입니다. 단순 감산에 그치지 않고 범용 제품을 줄이고 의료용 저밀도폴리에틸렌(LDPE)과 폴리올레핀엘라스토머(POE) 같은 고부가 소재로 포트폴리오를 전환한다는 구상입니다. 세 회사는 신사업에 총 1,500억 원을 투입하고 향후 3년 이상에 걸쳐 설비를 전환, 고부가 제품 비중을 30~50%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2029년 영업이익 흑자 전환이 공식적인 목표입니다.
POE는 미국 기업이 독점하던 시장으로, 자동차와 태양광 분야로의 확장이 기대됩니다. 의료용 LDPE 역시 주사기·수액백 등 국가 공급망 안전성과 직결돼 있어 전략적 가치가 큽니다. 반면 원가 구조의 근본적 개선 없이 고부가 전환만으로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중국 증설과 지정학적 리스크가 단기 시황 정상화를 어렵게 만들고 있어, 울산과 여수의 추가 재편까지 진행되어야 화학 업종이 겪고 있는 구조적 할인이 점진적으로 풀릴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