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 미국대사, 남대문 호떡 들고 부임…20년 전 허바드의 교훈은

동경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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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달 전 수정 · 2026년 8월 2일 오전 6:45

발행: 2026년 8월 1일 오후 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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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스틸 주한 미국대사가 1년 반의 공백을 끝내고 부임했습니다. 한국계 최초 여성 대사인 그는 남대문시장과 광화문 등을 방문하며 친화 외교를 펼쳤는데요. 하지만 외교가에서는 2002년 효순·미선 사건 당시 법적 절차만을 고집하며 반미 감정을 키웠던 허바드 전 대사의 실패를 되새기고 있습니다. 정서적 교감 없이는 법적 정당성도 공감을 얻기 어렵다는 교훈 속에서, 스틸 대사는 트럼프 행정부의 실무 현안과 한국 사회의 민감한 감정선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남대문 호떡 들고 나선 신임 대사

미셸 스틸 주한 미국대사가 약 1년 반의 공백을 끝내고 서울에 발을 디뎠습니다.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난 한국계 최초의 여성 주한미국대사인 스틸 대사는 부임 직후부터 남대문시장과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부모님이 다녔던 영락교회를 차례로 찾았는데요. SNS에는 호떡을 들고 상인과 함께 사진을 찍는 모습이 올라왔고, 남편과 함께 손하트 포즈를 취하는 등 이례적으로 친근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당연히 이런 행보는 한국 사회와의 심리적 거리감을 좁히려는 의도로 풀이됩니다. 입국 당일 한국어로 인사말을 전하고, 기억 속 정겨운 서울의 풍경을 회상한 것도 같은 맥락이죠. 한국계라는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워 대중과 정서적 교감을 나누려는 소프트 외교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2002년의 아픈 기억, 허바드의 전철

스틸 대사가 한국 사회의 정서를 읽으려는 이유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20여 년 전 토머스 허바드 전 대사의 사례가 선명한 경고로 남아 있기 때문인데요. 2002년 효순·미선 사건이 터졌을 때, 허바드 대사와 미군은 SOFA(한미주둔군지위협정)에 따른 법적 절차만을 강조했습니다. 재판권 행사의 정당성을 내세우며 가해 병사들의 신병을 넘기지 않았고, 이후 무죄 선고와 즉각적인 출국 조치가 이어졌습니다.

사실 당시 한국 사회는 이미 1992년 윤금이 살해 사건 이후 주한미군 문제에 대한 공분이 컸던 상황이었습니다. 법적 논리는 통했지만 국민들이 느끼는 감정적 고통과 분노는 외면되었고, 결국 광화문 촛불집회로 비화된 대규모 반미 시위가 전국을 뒤덮었죠. 허바드 전 대사도 훗날 한국과 미국이 사과와 책임을 바라보는 문화적 틀이 다르다는 점을 인정했다고 하는데요.

법적 정당성만으로는 설득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점, 이것이 허바드 전 대사가 남긴 가장 큰 교훈입니다.

친화 외교 너머의 실무 과제

스틸 대사의 부임은 시점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첫 주한미국대사라는 점에서, 통상 현안과 국방 협력을 조율해야 할 실무적 부담이 큰 상황입니다. 쿠팡 관련 통상 문제나 원자력 추진 잠수함, 우라늄 농축 권한 확보 등 복잡한 의제들이 산적해 있는데요. 외교가에서는 스틸 대사가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인맥을 지녔다는 점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반대로 이런 기대는 곧 시험대가 될 겁니다. 남대문시장에서의 호떡 인증샷은 좋은 시작이지만, 한국 사회의 민감한 감정선을 읽지 못하면 언제든 위기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특히 주한미군이나 SOFA 관련 문제처럼 국민적 정서가 복잡하게 얽힌 현안이 터질 경우, 친근한 이미지는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죠.

결국 스틸 대사에게 요구되는 것은 정서적 교감과 실무적 조율이라는 두 축을 모두 견디는 균형감각입니다. 과거의 실패를 되새기며 한국 땅을 누비는 그의 행보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앞으로의 동향에 귀가 기울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