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이해관계가 가른 통합의 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건 전남·광주 통합특별법뿐입니다. 같은 날 상정된 충남·대전, 대구·경북 통합특별법은 지역 여론과 야당의 반대를 이유로 표결 자체가 보류됐는데요. 이 같은 ‘선별적 통과’는 행정통합이 지역 발전의 당위성보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좌우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전남과 광주는 상대적으로 여론이 수렴된 반면, 다른 지역들은 지역 내 반대와 정치적 계산이 얽히면서 통합의 문이 좁아진 겁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통합과 관련해 “천년의 역사를 가진 광역 행정구역 통합은 충분한 공감 없이 일방적으로 강행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충남·대전 통합에 대해 야당과 충남시도의회가 반대하고 있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이들의 동의 없이 밀어붙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죠. 대통령의 발언은 통합이 지역 주민과 정치권의 폭넓은 공감대를 전제로 해야 한다는 원칙론을 강조한 것입니다. 반면, 이미 통과된 전남·광주 통합법을 둘러싸고는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에 돌입하며 본회의 처리까지 난항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인구 감소 대응에서 시작된 통합 논의
이번 행정통합 논의는 정부가 추진해온 ‘5극3특’ 전략의 일환입니다. 인구 감소와 지역 경제의 침체라는 공통된 위기에 대응해 광역자치단체의 규모와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취지였죠.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의 경우, 1986년 분리된 지 40년 만에 재결합을 시도하는 것이고, 출범하면 서울특별시에 준하는 법적 지위와 약 20조 원의 재정 지원을 받게 됩니다. 문제는 이러한 국가적 전략도 지역 내 치밀한 정치적 판세 앞에서는 무력해질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충남·대전과 대구·경북 통합이 보류된 배경을 보면 그 복잡함이 드러납니다. 충남의 경우, 국민의힘 소속인 김태흠 지사와 지역 시민단체의 반대가 있었습니다. 대구에서는 시의회가 공식적으로 반대 성명을 내기도 했죠. 야당인 국민의힘은 이들을 의식해 통합법 처리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욱이 충남·대전 통합이 무산되면 통합 단체장 출마가 유력했던 강훈식 청와대 비서실장의 거취 문제가 불거지는 등, 당내 정치 구도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철우 경북지사는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한 국가적 과제가 정쟁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고 촉구했지만, 정치 현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향후 전망과 남은 쟁점들
현재 전남·광주 통합특별법은 필리버스터 장벽에 부딪혀 이달 내 본회의 처리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민주당은 필리버스터 강제 종료를 위해 다른 소수 야당의 협조를 구하고 있지만, 3월 초가 돼야 표결이 이뤄질 것으로 보입니다. 통합 시 출범은 7월 1일로 예정되어 있어, 6월 지방선거에서 초대 시장을 뽑아야 하는 시간적 압박도 점점 커지고 있죠. 통합이 확정된 지역도 법적 처리부터 실제 운영에 이르기까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한편, 보류된 충남·대전과 대구·경북 통합의 미래는 더욱 불투명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역 공감대 형성을 강조한 이상, 야당과 해당 지역 의회의 반대가 지속되는 한 통합 재추동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전남·광주 외 다른 지역 통합을 위해 국민의힘과 정치적 거래를 할지 여부는 미지수죠. 결국 행정통합은 인구 감소와 지역 경제 위기라는 객관적 필요성과 정치권 및 지역의 주관적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복잡한 퍼즐입니다. 이번 사태는 지역의 생존과 발전을 위한 통합 논의가 어떻게 정치적 각축의 장으로 전락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가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