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 전 혈통을 찾아간 일본 왕실
일본 국회가 지난 17일과 18일, 왕족 수 확보를 위한 황실전범 개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번 개정으로 나루히토 일왕과 600년 전 조상을 공유하는 옛 왕족 남성을 양자로 들일 수 있게 되었고, 그 아들에게 왕위 계승 자격이 주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현 일왕의 외동딸인 아이코 공주는 여전히 왕위를 이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번 법 개정은 1949년 이후 처음으로 황실전범 본칙이 수정된 사례입니다. 당연히 많은 관심을 모았는데요. 개정안의 핵심은 2차 대전 이후 평민이 된 구 궁가 출신 남계 남성을 왕실 양자로 받아들여 그들의 아들에게 계승권을 인정하는 내용입니다. 현재로서는 36촌에서 38촌에 이르는 먼 친척 관계의 남성 6명 정도가 대상이 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국민 70%가 찬성했지만
이번 결정의 배경에는 왕실의 심각한 후계자 부족 문제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현재 나루히토 일왕의 직계 후손은 아이코 공주뿐이며,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남성 후계자는 2006년생 조카 한 명만 남아있는 상황입니다. 사실 왕위 계승의 맥이 끊길 수 있다는 위기감은 꽤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이번 개정이 모든 대안을 고려한 결과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마이니치신문 등의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70% 이상, 심지어 자민당 지지층의 75%까지 여성 왕위 계승을 찬성했는데요. 정치권이 이런 민의를 외면한 채 남성 승계 원칙만 고집했다는 비판이 거섭니다. 나루히토 일왕도 공개 석상에서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방향을 언급한 바 있어 정치권의 결정이 왕실의 입장과도 다소 엇갈린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당연히 국제사회의 시선도 따가운 편입니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2024년부터 일본의 남성 전용 계승 제도가 차별적이라며 개정을 권고했고, 구테흐스 사무총장도 여성 권리 향상을 위한 정책을 촉구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왕위 계승 자격이 기본적 인권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유럽과 다른 길을 선택한 이유
스페인, 네덜란드, 스웨덴 등 유럽 왕실들은 이미 성별에 관계없이 장자가 왕위를 잇는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반면 일본은 2,600년 남계 남성 승계 전통을 유지해야 한다는 보수 진영의 주장을 수용하면서도, 현실적으로는 600년 전 혈통까지 거슬러 올라가 후계자를 찾아야 하는 모순된 상황에 놓였습니다.
물론 이번 개정안에도 긍정적인 변화는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성 왕족이 결혼 후에도 왕실 신분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 그것인데요. 이는 그동안 여성 왕족이 결혼하면 반드시 왕실을 떠나야 했던 관행을 일부 바꾼 것입니다. 다만 왕위 계승은 여전히 남성에게만 허용되므로, 근본적인 성 차별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개정으로 당장 왕위 계승 순위가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 사회 내부에서 여성 왕위 계승에 대한 논의가 재점화될 가능성은 충분해 보입니다. 전통과 현대 가치 사이에서 일본 왕실이 앞으로 어떤 지점을 찾아갈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