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청사 앞에 세워진 바리케이드
지난달 30일 바르샤바 헌법재판소 청사 앞에는 바리케이드와 무장 경찰이 배치됐습니다. 출입이 막힌 보그단 시비엥치코프스키 헌재소장은 이를 명백한 쿠데타라고 규정했는데요. 세네갈 방문길에 오르던 카롤 나브로츠키 대통령도 전용기를 되돌려 헌재로 향했고, 몸싸움 끝에 청사에 들어갔습니다. 경찰이 대통령과 헌재소장의 진입을 동시에 막아선 것은 폴란드 헌정사에서 처음 있는 일입니다.
발단은 안나 코르빈-피오트로프스카 재판관의 선언이었습니다. 헌재소장과 부소장의 직무를 정지하고 자신이 재판소를 운영하겠다고 밝히면서 갈등이 터진 겁니다. 투스크 총리는 법치주의 회복은 피할 수 없는 의무라며 맞섰고, 대통령실은 헌법기관이 무력으로 장악됐다고 반발했습니다.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 뿌리
갈등의 시작은 2015년입니다. 총선을 앞둔 의회가 임기 종료를 앞둔 재판관 후임 5명을 미리 선출했고, 선거에서 승리한 법과정의당이 그해 12월 이들을 모두 교체했습니다. 2023년까지 재판관 10명이 추가로 임명되면서 헌재 15명 전원이 사실상 같은 성향으로 채워졌습니다.
2023년 총선에서 승리한 시민연단은 헌재를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보고 새 재판관 선출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나브로츠키 대통령은 이 가운데 5명의 취임 선서 접수를 거부했고, 기존 헌재소장도 이들의 재판 참여를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의회가 뽑은 재판관이 임명 단계에서 번번이 막히면서 헌재 구성이 정치 협상의 대상이 되어버린 셈입니다.
동거 정부가 만든 구조적 충돌
폴란드는 총리가 내정과 행정을 총괄하는 실질적 1인자이지만, 직선으로 뽑힌 대통령도 법률 거부권과 임명권 같은 강력한 권한을 쥐고 있습니다. 위헌법률심사권을 가진 헌재가 의회 법률을 무력화할 수 있으니, 내년 총선을 앞둔 정부로서는 헌재 구성이 입법 성과와 직결됩니다.
나브로츠키 대통령은 취임 10개월 동안 낙태 처벌 완화와 사법 개혁 등 법안 37건에 거부권을 행사해 역대 최단기 최다 기록을 세웠습니다. 투스크 총리는 대통령이 정략적 목적으로 국가 운영을 마비시키고 있다고 비난합니다.
바깥 파장도 만만치 않습니다. 폴란드는 서방의 대우크라이나 지원 물자 90% 이상이 지나는 병참 허브이자 나토 동부 전선의 최전방입니다. 대통령과 총리가 안보 사령탑에서 계속 충돌하면 대러시아 억제력과 서방 안보 공조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