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달아 바뀐 선고 기일, 그리고 착각
대전지법의 한 항소심 재판부가 약정금 소송 사건의 선고 기일을 여러 차례 바꾸는 과정에서 최종 변경일을 잊어버리고 종전 날짜에 판결을 선고해버린 일이 있었다. 대법원 1부는 이 같은 절차상 오류를 '중대한 위법'으로 보고 원심 판결을 파기했다.
해당 사건의 선고 기일은 처음 10월 28일로 지정됐다가 12월 9일로 한 차례 미뤄졌고, 이후 12월 16일로 다시 변경됐다. 그런데 재판장은 12월 16일 오전에 기일변경명령을 내려 이듬해 1월 13일로 선고일을 또 한 번 옮겼다. 이 명령은 당일 원고와 피고 소송대리인에게 각각 송달됐다.
문제는 그 이후에 발생했다. 변경 명령을 내린 지 몇 시간 만인 같은 날 오후, 재판장은 12월 16일이 선고일이라는 착각 속에 그대로 판결을 선고해버린 것이다. 다음 날 법원 사무관이 기일변경명령이 착오로 송달된 것이라는 취지로 소송대리인들에게 유선으로 알리고, 명령서 원본을 폐기 처리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대법원 "이미 효력 발생한 기일, 위반은 중대"
패소한 원고측이 상고하자 대법원 1부(주심 신숙희 대법관)는 기일변경명령이 당사자에게 송달돼 효력이 발생한 이상 1월 13일이 적법한 선고기일이라고 봤다. 따라서 12월 16일은 더 이상 유효한 기일이 아니었으며, 이때 내려진 판결은 적법한 지정과 고지 없이 선고한 것과 다름없다는 판단이다. 기일 변경이 이미 적법하게 마무리된 상태에서 법원 내부의 실수만으로 선고 절차가 어긋난 것 자체가 당사자의 재판 받을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는 게 대법원의 시각이다.
실무 경각심 환기한 판결
대법원은 사건을 다시 판단하도록 대전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이번 결정은 기일 변경 후 당사자에게 송달이 완료된 이상 법원 내부의 사후 정정은 원칙적으로 효력을 인정받기 어렵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재판부가 선고 기일 관리와 같은 기본적인 절차조차 엄밀하게 챙기지 못할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를 보여준 사례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