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규모보다 방식이 달라졌다
LS일렉트릭이 미국 빅테크 기업과 1689억원(1억2523만 달러) 규모의 AI 데이터센터용 배전 설비 공급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2027년부터 2028년까지 2년간 38kV 고압 배전반을 대는 장기공급계약(LTA)인데요. 2027년 물량이 우선 확정됐고 2028년 규모는 추가 협의로 정해집니다.
고압 배전반은 데이터센터로 들어오는 특고압 전력을 각 설비에 나눠 보내고, 누전이나 단락이 발생하면 회로를 끊어 서버를 지키는 장비입니다. 24시간 멈추지 않는 AI 데이터센터에서는 전력 품질이 곧 운영의 성패를 가릅니다. 이번 계약에서 눈에 띄는 건 금액보다 계약 방식입니다. 빅테크가 단기 발주 대신 몇 년치 물량을 미리 묶어두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죠.
LS일렉트릭은 일주일 새 블룸에너지와의 1853억원 계약까지 더해 3542억원을 수주했습니다. 2분기 말 수주잔고는 7조원을 넘어섰습니다.
수주잔고가 말해주는 것
숫자는 업계 전체로 이어집니다. 효성중공업의 중공업 부문 수주잔고는 23조8344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50% 늘었고, HD현대일렉트릭은 12조3105억원, LS일렉트릭은 6조8896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연 매출로 환산하면 각각 4.1년, 2.8년, 2.4년치입니다. 몇 년치 일감이 이미 쌓여 있다는 뜻이죠.
배경에는 AI 데이터센터 투자만 있는 게 아닙니다. 미국 송전선과 변압기의 상당 부분이 25년 넘게 쓰이면서 교체 수요가 몰렸습니다. 우드맥킨지에 따르면 변압기 평균 납기는 143주에서 160주 이상으로, 고압 차단기는 125주로 길어졌습니다. PJM의 2028~2029년 용량시장 경매에서도 공급이 기준보다 6.8GW 부족했습니다. 미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가 대규모 수요처 등록제를 승인한 것도 이런 수급 압박과 맞닿아 있습니다.
현지에서 끝내야 하는 경쟁
빅테크도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아메리칸일렉트릭파워는 와이오밍주에 702MW 연료전지 설비를 세우기 위해 40억 달러를 투자하고 블룸에너지와 20년 전력구매계약을 맺었습니다. 자체 발전을 하더라도 변압기와 수배전반은 필요합니다.
그래서 수주 경쟁의 축은 자연스럽게 공급 능력으로 옮겨갑니다. LS일렉트릭은 유타주 시더시티와 텍사스주 배스트럽에 현지 거점을 두고 영업부터 설계, 생산, 서비스까지 맡고 있습니다. HD현대일렉트릭은 울산 변압기 공장을, 효성중공업은 청주 배전캠퍼스를 통해 대응 폭을 넓히는 중입니다.
관건은 계약을 실제 납품과 매출로 얼마나 안정적으로 옮기느냐입니다. AI 투자 수익성에 대한 의문이 계속 제기되는 만큼, 장기계약이 늘어날수록 납기와 현지 대응력이 업체별 격차를 가를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