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마감한 76년의 삶
명진스님이 지난 22일 제주 바다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향년 76세, 법랍 52년이었는데요. 고인은 서귀포 해상에서 프리다이빙 장비를 착용한 채 발견되었으나 병원에서 끝내 숨을 거두었습니다. 장례위원회는 일부 보도와 달리 프리다이빙 중 사고가 아니라 평소 하던 바다 수영 중 심정지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범죄 혐의점은 전혀 없었고, 스님은 사망 전날까지 지인과 차담을 나누는 등 건강한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당연히 불교계와 시민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명진스님은 단순한 수행자를 넘어 한국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불교의 사회적 참여를 몸소 실천한 인물이었습니다. 1969년 해인사에서 출가한 그는 1980년대 민주화 운동에 발을 들인 뒤 노동, 인권, 남북 평화 문제에 목소리를 냈고, 4대강 사업과 국정교과서, 사드 배치 등에도 거침없이 비판의 화살을 던졌습니다.
'운동권 주지'의 파격과 갈등
2006년 봉은사 주지로 부임한 명진스님은 사찰 재정을 외부에 공개하고 종무회의에 신도들을 참여시키는 등 이례적인 행보를 보였습니다. 이때 '절은 절답게'라는 신념 아래 불교 본질 회복을 외쳤던 그는 언론과 대중에게 '운동권 주지'로 각인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파격은 종단 내부와의 갈등을 낳기도 했는데요. 2017년 조계종으로부터 제적 처분을 받은 것입니다.
물론 명진스님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소송을 제기해 1·2심에서 모두 승소했고, 결국 양측이 상고하지 않기로 합의하면서 약 9년 만인 올해 초 승적을 회복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 사찰 대상이 되기도 했고, 보수 진영으로부터 '좌파 스님'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그는 권력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최근에도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사태 이후 책임 규명을 촉구했죠.
민주열사묘역에서의 마지막 안식
이번 장례는 특정 종단에 국한된 형식이 아닙니다. 조계종과 시민사회가 공동으로 상임 장례위원회를 구성해 '종교시민사회장'으로 치르는데요. 영결식은 25일 오전 10시 봉은사에서 엄수되고, 다비식은 출가 본사인 충북 보은 법주사에서 봉행됩니다.
안장지는 경기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장례위원회는 고인이 생전 백기완 선생, 전태일 열사, 문익환 목사가 계신 곳에 함께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습니다. 이재명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해 각계 인사들의 추모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스님은 이제 민주와 인권을 위해 투쟁했던 동지들의 곁에서 영면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