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자국 철강 산업 보호를 위해 수입 철강 제품에 대한 무관세 할당량을 대폭 축소하고 관세율을 50%로 인상하는 새로운 규제안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이는 미국에 이어 EU라는 한국 철강의 최대 수출 시장마저 무역 장벽을 높이면서, 한국 철강업계가 '이중고'에 직면하게 된 것입니다. EU 집행위원회는 2024년 철강 업계에서 발생한 1만 8천 건의 일자리 감소 등을 이유로, 기존 철강 세이프가드 조치를 대체할 저율관세할당(TRQ) 제도 도입 초안을 공개했습니다.
EU의 보호무역 강화 배경
이번 EU의 조치는 역내 철강 산업의 공급 과잉과 경쟁력 약화를 막기 위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특히, 값싼 중국산 철강의 유입을 차단하고, 미국과의 철강 관세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려는 전략적 의도도 담겨 있습니다. EU는 2018년부터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과에 대응해 세이프가드를 시행해왔으나,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따라 내년 6월 말 만료되는 세이프가드를 대체하기 위해 더 강력한 무역 제한 조치를 선택했습니다. 새 규정안은 연간 총수입량 중 무관세 할당량을 기존 대비 47% 줄인 1,830만 톤으로 제한하며, 이 할당량을 초과하는 철강 제품에는 25%에서 50%로 인상된 관세를 부과합니다. 또한, '조강(melt and pour)' 기준을 도입해 모든 수입 철강재에 대한 원산지 증빙을 의무화하며 행정적 부담을 가중시켰습니다.
한국 철강 산업의 위기감 고조
EU의 이번 규제 강화는 이미 미국의 고율 관세로 수출 감소세를 겪고 있는 한국 철강업계에 상당한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난해 한국의 대 EU 철강 수출액은 44억 8천만 달러 규모로, 미국을 제치고 최대 수출 시장이었던 만큼 이번 조치의 파급력은 더욱 클 수 있습니다. 특히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인 열연·냉연·아연도금강판 등 평판재가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산업연구원은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 새로운 TRQ 제도가 맞물리면 한국의 수출 규모가 크게 위축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정부와 업계의 대응 방안
정부는 EU의 이번 조치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며, 국익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한 다각적인 대응에 나섰습니다.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마로시 셰프초비치 EU 통상담당 집행위원과 만나 한국의 입장과 우려를 적극적으로 전달할 예정입니다. 문신학 산업통상부 차관은 추석 연휴에도 불구하고 인천항 등 철강 수출 현장을 방문해 업계의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정부의 지원 의지를 강조했습니다. 산업통상부는 약 4천억 원 규모의 '철강 수출공급망강화 보증상품' 신설을 포함한 지원 방안을 검토 중이며, 이달 중 '철강산업 고도화 방안'을 발표하여 품목별 대응, 불공정 수입 통상 방어, 저탄소·고부가 전환 투자 지원 등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업계 역시 해외 현지 제철소 운영 및 공급망 다각화 등 전략적 현지화 노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보호무역 확산 속 국제 통상 질서 변화
EU의 이번 철강 관세 인상은 '트럼프 트리거'로 불리는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 확산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미국과 EU를 넘어 여러 국가에서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무역 장벽을 높이는 추세는 글로벌 경기 회복세를 약화시키고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을 증대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됩니다. WTO는 내년 세계 상품 무역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며 이러한 흐름이 세계 경제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경고했습니다. 한국 철강업계는 이러한 변화하는 통상 환경 속에서 EU와의 협상력을 높이고, 고품질·고부가 제품 개발 및 공급망 다변화를 통해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이러한 국제적인 보호무역 강화 흐름 속에서 한국 경제는 더욱 정교하고 전략적인 통상 외교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