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불러온 정치적 파장
영화 '암살자(들)'이 개봉과 함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습니다. 1974년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다룬 이 작품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중앙정보부의 관여를 암시해 논란을 일으켰는데요. 관객 169만 명을 넘기며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지만, 정치적 공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국민의힘 유영하·주호영 의원 등은 영화가 명백한 정치적 프로파간다라며 상영 중지와 함께 제작진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습니다. 박정희생가보존회 등 보수단체도 구미에서 집회를 열고 반발했죠. 영화의 흥행 성적과 별개로, 역사적 사실을 둘러싼 갈등이 사회 전면에 드러난 겁니다.
탈북민이 본 영화, 북한 선전영화와 '판박이'
논란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도 불거졌습니다. 2014년 남한으로 건너온 탈북민 한송이 씨는 이민호가 출연한다는 이유로 영화를 관람했다가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북한에서 봤던 선전영화 '민족과 운명'과 너무나 비슷했기 때문인데요.
'민족과 운명'은 김정일의 지시로 제작된 70부작 극영화로, 북한의 대표적 체제 선전물입니다. 한씨는 이 영화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권력 유지를 위해 부하들에게 아내를 암살하도록 지시하는 장면을 본 기억이 있는데, '암살자(들)'에서도 유사한 시나리오가 펼쳐졌다고 말합니다. 그는 역사적 사실을 왜곡한 영화는 퇴출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표현의 자유와 역사 왜곡 사이
이번 논란은 표현의 자유와 역사 왜곡이라는 오래된 주제를 다시 소환했습니다. 1988년 '그리스도의 마지막 유혹'과 2004년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각각 예수를 인간으로 묘사해 항의서한이 쏟아지고 반유대주의 논란에 휩싸였죠.
학계에서는 정치적 공방보다 시민사회의 숙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설동훈 전북대 교수는 파편사회의 갈등을 예로 들며 타협 없는 목소리 대신 숙의를 강조했고, 허창덕 영남대 교수는 창작자의 표현의 자유는 보장돼야 하지만 사회적 역사 인식과 벗어나면 갈등이 생긴다고 말했습니다. 팩션 장르의 특성상 허구와 사실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도 논란을 키우는 요인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이나 5·18 음모론을 영화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며,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