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번영과 성장률 하락의 역설
최근 한국 경제는 반도체 수출 호황으로 표면적 번영을 누리고 있습니다. 올해 4월 초순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49.4%나 급증했고, 반도체 수출은 무려 182.5%나 뛰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경제의 장기 체력을 나타내는 '잠재성장률'은 계속해서 내리막을 걷고 있네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올해 1.7%에서 내년에는 1.5%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반도체라는 한 가지 강력한 엔진이 돌아가는 와중에도 경제 전체의 '기초 체력'이 빠르게 약화되고 있다는 신호로 읽힙니다.
잠재성장률은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달성할 수 있는 최대 경제성장 한계를 뜻합니다. 쉽게 말해, 경제의 장기적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천장'이죠. 문제는 이 천장이 꾸준히 낮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2012년 3.6%였던 수치가 지난해 처음으로 2% 선이 무너졌고, 내년에는 1.5% 대까지 추락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반도체 수출 호황과 정부의 적극적 재정 정책으로 1분기 성장률이 1.7%를 기록하는 등 좋은 소식도 있지만, 전문가들은 이보다 훨씬 구조적인 문제를 우려하고 있습니다.
저출생·고령화가 깎아내리는 성장의 토대
잠재성장률 하락의 가장 뚜렷한 원인은 빠른 인구 구조의 변화입니다. 저출생과 고령화는 생산가능인구를 줄이고, 이는 자연스럽게 경제의 총생산 능력을 위축시킵니다. 노동력 공급이 줄어들면 성장의 기본 토대가 흔들리는 거죠. 여기에 생산성 증가 속도의 둔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기술 발전과 효율성 제고 속도가 예전만큼 빠르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또 하나 지적되는 것은 산업 구조의 불균형입니다. 반도체 등 특정 산업에 경제가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발생하는 이른바 '네덜란드병' 현상에 대한 우려입니다. 한 부문이 너무 강력하게 성장하면 자원과 투자가 그쪽으로 쏠리게 되고, 다른 산업들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겁니다. 국제통화기금(IMF) 데이터는 한국의 GDP갭률(실제 GDP와 잠재 GDP의 차이)이 2023년부터 5년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봅니다. 이는 경제가 본래의 생산 능력보다 아래에서 운영되고 있음을 의미하죠.
정책 대응과 '반등'을 위한 도전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이러한 우려에 대해 정부가 인지하고 있으며, 적극적인 정책 대응을 통해 잠재성장률을 반등시킬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그는 미국이 인공지능(AI) 혁신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린 사례를 언급하며, 한국도 유사한 길을 갈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습니다. 정부는 올해 6월경 하반기 경제성장전략을 마련해 구체적인 액션플랜을 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일각에서는 현재의 반도체 호황이 4차 산업혁명과 새로운 기술 주기인 '콘트라티예프 타동'의 초입 단계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글로벌 투자은행들도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을 2%대에서 3% 가까이로 상향 조정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죠. 그러나 핵심은 일시적인 호황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성장 구조를 만드는 데 있습니다. 정부는 AI 혁신 추진, 규제 개혁, 노동 시장 유연화, 서비스 산업 경쟁력 강화 등 다각도의 구조 개선을 통해 경제의 기초 체력을 다져야 한다는 주문을 받고 있습니다. 잠재성장률 하락이라는 경고등이 켜진 지금, 한국 경제의 미래는 단순한 경기 부양을 넘어 근본적인 체질 개선의 성패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