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물은 늘어도 증여는 더 빠르게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가 5월 9일이면 끝납니다. 이 시점을 앞두고 서울의 고가 주택 매물은 분명히 늘어나고 있는데요. 그러나 특이한 점은 실제로 거래가 활발해지기보다는, 매물 등록만 해놓고 실제 판매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오히려 눈에 띄는 건 증여 등기 신청 건수의 급증입니다. 지난해 서울의 집합건물 증여 등기 신청은 1054건으로 약 3년 만에 1000건을 넘어섰고, 11월 대비 무려 47%나 증가했습니다. 특히 송파구처럼 자산가가 밀집한 지역에서는 주택 거래 중 증여가 차지하는 비중이 18.4%에 달해 서울 평균(12.1%)을 훌쩍 뛰어넘었죠. 매물은 쏟아져 나오지만, 정작 시장에는 유입되지 않고 가족 내부로 ‘직행’하는 모습이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세금 저울질, 증여가 답일까
왜 다주택자들은 급매를 선택하지 않고 증여를 택할까요? 그 핵심은 역시 세금에 있습니다. 유예 종료 후 양도세 부담이 급격히 커질 것이라는 예상이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인데요. 예를 들어, 10년 전 10억 원에 샀던 아파트를 90억 원에 판다면, 유예 종료 전 양도세는 30억 원대지만, 종료 후에는 중과세율 등이 적용되며 56억 원대로 거의 두 배 가까이 불어납니다. 반면 증여를 선택하면 상황이 조금 달라집니다. 증여세와 취득세가 발생하긴 하지만, 공제를 활용하거나 과세 구간을 분산하는 등 절세 전략을 펼칠 여지가 상대적으로 크다는 판단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많은 다주택자들은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허겁지겁 팔아치우기보다, 자녀에게 증여하고 그 세금을 지원해주는 방식을 장기적으로 더 유리한 선택으로 보고 있죠.
물론 무조건 증여가 유리한 것은 아닙니다. 전문가들은 양도차익이 적은 주택부터 처분해 양도세 자체를 최소화하는 전략을 먼저 고려해보라고 조언합니다. 1주택자가 되어 장기보유특별공제 등의 혜택을 받으면 세액이 크게 줄어드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개인의 보유 주택별 취득가, 현재 시세, 향후 가치 상승 전망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 저울질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시장에 남는 건 경직성
이런 증여 확산 흐름이 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매물 공급이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거래 시장에 나오는 물량은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현상은 정책이 의도한 매물 증가와 가격 조정 압력이 시장에 제대로 전달되는 걸 막는 ‘왜곡’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큽니다. 매수자들은 유예 종료를 계기로 급매 물량이 쏟아져 나와 가격이 조정되기를 기대하지만, 매도자들은 증여라는 대안을 선택하면서 쉽게 가격을 내리지 않게 되죠.
이로 인해 가격의 하방 경직성은 더욱 강해지고, 시장의 신호 자체가 흐려질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무주택 실수요자 입장에서는 오히려 좋은 집을 고르기 더 어려워질 수 있는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증여를 선택하는 다주택자들이 우량 자산을 가족 내에 묶어두는 전략을 택하는 만큼, 시장에 나오는 질 좋은 매물은 더욱 줄어들 수 있다는 거죠. 결국 이번 유예 종료는 단순한 세제 변화를 넘어, 자산 보유와 전략에 대한 인식 자체를 바꾸면서 시장 구조에 깊은 잔물결을 남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