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호황이 만든 63조
올해 국세수입이 예상을 크게 웃돌면서 정부의 재정 운용 폭이 넓어졌습니다. 재정경제부의 세수 재추계 결과에 따르면 올해 국세수입은 478조6000억원으로, 2월 추가경정예산에서 잡았던 415조4000억원보다 63조2000억원 늘어난 겁니다. 반도체 산업 호황이 세수 상승을 이끈 핵심 요인으로 꼽힙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이 초과세수를 주거와 일자리, 서민금융 등 3대 사회정책에 집중 투입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주거안정 플랜을 통해 119만호를 공급하고, 국민일자리 사업과 포용금융 확대를 추진해 양극화와 불평등을 완화하겠다는 구상입니다. 정부는 미래대응기금에 56조2000억원을 적립해 기금 규모를 220조원까지 키울 계획도 함께 내놨습니다.
명절 할인 지원에 기금 동원
논란의 불씨는 명절 농축수산물 할인 지원 예산에서 붙었습니다. 이 대통령은 내년 설과 추석 할인 지원 규모를 1조원 가까이로 확대하자며, 재원 마련 방안으로 미래대응기금 활용을 직접 거론했습니다. 현재 추석 1900억원, 설 1000억원 수준인 지원액을 대폭 늘리겠다는 겁니다.
문제는 기금의 성격입니다. 미래대응기금은 반도체 호황 등으로 생긴 초과 세수를 적립해 청년과 성장동력, 지방, 교육 같은 미래 투자 분야에 쓰고 세수 결손기에 대비하는 재정 안정 장치로 설계됐습니다. 단기 물가 지원에 이 기금을 쓰면 취지가 흐려지고, 야권의 '정권 쌈짓돈'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국민의힘은 상시 추경 통로가 될 수 있다고 반발하고, 더불어민주당은 재정 안정화 장치로서의 역할을 강조하며 맞서고 있습니다.
청와대는 확대 해석을 경계했습니다. 강유정 수석대변인은 명절 물가 조절을 위해 올해 1900억원이 쓰였고, 양극화 완화를 위한 여러 방안을 모색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허장 재정경제부 2차관도 기금이 무조건 자유롭게 사용되는 건 아니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국채 상환 카드와 남은 쟁점
초과세수의 또 다른 행선지로 국채 상환이 거론됩니다. 미국 등 주요국 국채 금리가 급등하면서 한국 10년물 금리도 4.5%를 넘어선 상황이라, 초과세수 일부를 국채 상환에 쓰면 금리 상승 압력을 누그러뜨리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겁니다. 국채 상환은 국회 동의 없이 신속히 진행할 수 있다는 점도 정부가 주목하는 대목입니다.
다만 지방 재정에 대한 우려도 함께 나옵니다. 국세가 늘면 지방교부세율 조정 문제가 따라붙는데, 지방교부세가 줄면 지방자치단체 살림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겁니다. 민주당 소속 광역단체장들은 세수 증가분이 지방에도 반영돼야 한다고 요구했고,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은 지방정부 지원이 얇아지지 않도록 하겠다고 답했습니다. 결국 명절 물가 지원이 미래대응기금의 투자 대상으로 인정될지, 국회 심사에서 법적 근거와 지출 대상, 통제 장치를 어떻게 정할지가 핵심 쟁점으로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