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은 오르고 대출은 줄고
은행 창구의 분위기가 요즘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시중은행들이 정기예금 금리를 3%대 중반까지 끌어올리며 고객 잡기에 나섰는데요. 우리은행은 '우리 첫거래우대 정기예금' 금리를 최고 연 3.6%까지 올렸고, NH농협은행도 3.45%, 신한은행도 3.4%로 인상했습니다. 이처럼 시중은행들이 한참 동안 볼 수 없었던 파격적인 예금 금리를 내걸이자, 정기예금 자금은 지난 7월과 8월 두 달 연속 크게 늘었습니다.
하지만 창구 반대편 대출 창구는 썰렵기만 합니다.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9월 들어 1조 1,500억 원 이상 줄어들며 올해 3월 이후 6개월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습니다. 특히 주택담보대출, 신용대출, 전세자금대출이 동시에 줄어든 건 8개월 만에 처음 있는 일인데요. 같은 은행 안에서도 예금은 북적이고 대출은 한산한 이중적 풍경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수신 전쟁에 뛰어든 금융권
은행권의 예금 금리 경쟁은 이미 인터넷전문은행과 증권사, 상호금융권으로 번져 있습니다. 케이뱅크는 정기예금 금리를 연 3.61%로, 카카오뱅크와 토스뱅크도 3.60%를 제시하며 시중은행보다 한발 앞서 있습니다. 증권사들도 발행어음이나 CMA, IMA 등 수신상품 금리를 도미노식으로 올렸는데요. 우리투자증권의 발행어음은 3.95%까지 올랐고, 일부 IMA 상품은 기준수익률이 연 5%에 달했습니다. 새마을금고와 신협 같은 상호금융권은 일부 지점에서 최고 연 4.3%의 금리를 내놓으며 고객 유치에 열을 올렸고, 반면 저축은행은 유동성 확보가 이미 이뤄졌다는 판단에 따라 금리 인상 경쟁을 멈추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처럼 금융권 전체가 수신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는 건, 자금 조달 비용이 올라가면서 대출 재원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기조가 이어지고 있고, 시장금리도 덩달아 오르고 있어 은행들이 예금을 끌어모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대출 위축과 이자 부담의 악순환
문제는 예금 금리가 오르면서 대출 금리도 덩달아 오를 기세라는 겁니다. 5년물 은행채 금리는 연 4.578%까지 치솟아 약 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변동금리 대출의 지표인 코픽스도 상승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은행들이 예금에서 더 많은 이자를 지급하게 되면, 이 조달 비용은 결국 대출 금리에 반영되기 마련입니다.
이미 대출 시장에서는 이런 부담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대출 금리가 오르고 은행들이 총량 관리에 나서면서 가계대출이 위축되고 있는데요. 예금 금리 인상이 오히려 대출 금리 상승을 부추기는 악순환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물론 일각에서는 예금 유입을 본격적인 역머니무브로 보기는 어렵다며, 만기 재예치나 일시적 자금 대기 성격이 크다고 분석하기도 합니다. 다만 시장금리 상승세가 계속된다면 예금과 대출 금리의 동반 상승은 당분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