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 개척자 전유성, 후배들 추모 속 영면하다

v조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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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전 수정 · 2025년 9월 29일 오전 12:45

발행: 2025년 9월 28일 오후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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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년 76세의 코미디 개척자 전유성이 별세했습니다. '개그맨' 용어 정착, '개그콘서트' 창시 등 코미디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고인은 후배들을 아끼고 돕는 따뜻한 선배이자 뛰어난 아이디어 제공자로 기억됩니다. 동료와 후배들은 눈물 속에서 그의 헌신과 유머를 추모하며 마지막 길을 배웅했습니다.

코미디 개척자 전유성, 후배들 추모 속 영면하다

향년 76세의 코미디계 대부 전유성 님이 별세 소식을 전했습니다. 대한민국 코미디의 선구자로 불리는 그는 '개그맨'이라는 용어를 대중화하고 '개그콘서트'를 창시하는 등 한국 코미디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9월 25일 폐기흉 악화로 세상을 떠난 고인의 마지막 길은 동료와 후배 코미디언들의 눈물과 헌사에 둘러싸여 배웅되었습니다.

‘개그맨’ 용어 정착과 코미디 혁신을 이끌다

1969년 TBC 방송작가로 데뷔한 전유성은 ‘유머 1번지’, ‘쇼 비디오 자키’ 등 수많은 인기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방송 코미디의 새 시대를 열었습니다. 그는 단순한 코미디언을 넘어, ‘개그맨’이라는 호칭을 한국 방송계에 정착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또한, KBS ‘개그콘서트’를 창시하며 공개 코미디의 부흥을 이끌었습니다.

고인은 "남들이 생각 안 할 때 한 번만 더 생각하면 훨씬 재미있는 세상이 펼쳐진다"는 말처럼, 남다른 통찰력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코미디에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더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철학은 후배 코미디언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전유성은 한국 코미디의 대중화와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따뜻한 선배이자 ‘아이디어 뱅크’로 기억되다

전유성 님의 영결식은 희극인장으로 엄수되었으며, 김학래 대한민국방송코미디언협회 회장이 장의위원장을 맡았습니다. 이수근이 사회를, 최양락이 약력 보고를, 이홍렬과 김신영이 추도사를 맡아 고인을 추모했습니다. 동료들은 그를 ‘아이디어 뱅크’이자 튀는 역할보다는 동료의 웃음을 돋보이게 하는 데 헌신한 따뜻한 선배로 기억했습니다.

후배 최양락은 전유성 님과 함께 즉흥적인 자전거 여행을 떠날 만큼 끈끈한 우정을 나눴으며, ‘유머 1번지’의 ‘손님’ 코너 등에서 파트너의 허무개그를 완벽하게 받쳐주며 환상의 호흡을 선보였다고 회고했습니다. 그는 돈이나 명예에 욕심부리지 않고 후배들을 격려하는 진정한 스승이었다는 것이 많은 이들의 증언입니다.

특히 25년간 스승이자 멘토로 인연을 맺어온 김신영은 방송 중 전유성 교수의 부고 소식을 접하고 말을 잇지 못하며 오열했습니다. 김신영은 “다음 생에도 제 교수님으로 와주세요”라고 외치며, 전 교수가 자신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그의 부재가 얼마나 큰 빈자리로 느껴지는지 토로하며 깊은 슬픔을 드러냈습니다. 그의 따뜻한 인간미와 헌신적인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후진 양성과 지역 문화에도 기여한 삶

전유성 님은 예원예술대학교 코미디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후배 코미디언 양성에도 힘썼습니다. 또한, 대학로 철가방 극장,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 등을 통해 공연 무대를 확장하고 지역 문화 활성화에도 기여했습니다. 인사동에 '학교종이 땡땡땡'이라는 주점을 운영하며 후배들의 창작 활동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는 등, 잇속보다는 나눔을 실천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생전 유언에 따라 지리산 자락에 수목장으로 안치될 예정입니다. 고 전유성의 유쾌한 웃음과 따뜻한 가르침은 대한민국 코미디 역사 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그의 삶은 웃음 뒤에 숨겨진 진심과 헌신으로 가득 채워져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