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물가, 쌍끌이 분노
미국 전역에서 지난달 28일, 역대 최대 규모의 시위가 펼쳐졌습니다. ‘노 킹스(No Kings, 왕은 없다)’라는 구호 아래 약 800만에서 900만 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워싱턴 D.C., 뉴욕을 비롯한 50개 주 3,300여 곳의 거리로 나섰는데요. 유럽의 주요 도시에서도 연대 집회가 이어질 정도로 그 파장은 컸습니다. 이번 시위는 단순한 반전 운동을 넘어, 이란 전쟁의 군사적 개입과 함께 치솟는 물가, 강경한 이민 정책 등 트럼프 행정부 전반에 대한 광범위한 불만이 한꺼번에 분출된 형태였습니다. 특히 갤런당 8달러를 넘어서는 유가와 전쟁 장기화에 따른 경제적 부담이 서민들의 삶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면서 시위의 규모와 열기를 키운 주요 원인으로 꼽힙니다.
‘왕은 없다’는 외침의 무게
시위의 이름이자 핵심 구호인 ‘노 킹스’는 이번 시위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참전용사 스콧 오클리가 시위 현장에서 “파시즘과의 싸움”이라고 말한 것처럼, 이 구호는 트럼프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통치 스타일에 대한 강력한 경고입니다. 시위대는 거꾸로 게양된 성조기(조난 신호)와 트럼프 대통령을 풍자한 인형을 들고, “독재자 반대”, “트럼프는 거짓말하고 군인들은 죽어간다”는 구호를 외쳤죠. 이는 대통령직을 ‘왕권’에 비유하며, 삼권분립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정책을 펴는 현 행정부의 태도를 겨냥한 정치적 저항의 의미가 강했습니다. 지난해 6월과 10월에 이어 세 번째로 열린 이번 대규모 시위는 매회 참가자가 증가하며 반트럼프 여론이 일시적이지 않고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지지층의 균열과 정치적 파장
가장 주목할 점은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인 ‘MAGA’ 진영 내부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보수진영 최대 연례행사인 CPAC에서 35세 이상 응답자의 70%는 이란 전쟁을 지지한 반면, 35세 이하 청년층은 49%에 그쳤습니다. 젊은 지지자들은 전쟁으로 인한 물가 상승을 직접 체감하며 불편함을 표출했죠. 이러한 세대 간 입장 차이는 중간선거를 앞둔 공화당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백악관이 시위를 ‘좌파의 자금 지원을 받은 반미 집회’로 폄하했지만, 공화당 텃밭으로 여겨지던 텍사스, 아이다호 등에서도 시위가 확산된 것은 정치적 지형 변화의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향후 트럼프 행정부는 반전 여론을 무마하고 지지층을 재결집시키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할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