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가 덮친 일상
네팔 히말라야 산악지대에서 거대 빙하가 무너져 내리며 1,000명 이상의 사망자와 4,000명 이상의 실종자가 발생했습니다. 한국 기업이 건설하던 수력발전소도 90% 이상 소실됐는데요. 이번 참사는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간의 탐욕이 부른 기후 위기의 결과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가난하고 취약한 이들이 더 큰 피해를 입는 이른바 기후 카스트의 현실이 여실히 드러난 겁니다.
일회성 구호를 넘어
그동안 교계는 재난 때마다 ARS 모금 같은 일회성 구호에 집중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인 진통제에 가깝고, 근본 해법이 되기 어렵습니다. 이제는 긴급 구호를 넘어 공동체가 무너지지 않고 버텨내는 힘, 회복력을 길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성경 속 요셉이 7년 흉년을 대비해 곡물 창고를 세우고, 노아가 비 오기 전 방주를 준비한 일이 선제적 회복력의 원형으로 꼽힙니다.
구체적인 실천도 제안됩니다. 예배당을 폭우와 폭염을 피하는 기후 쉘터로 개방하고, 소그룹 모임을 재난 시 취약계층의 생사를 확인하는 골든타임 비상망으로 재편하자는 겁니다. 철저한 탄소 금식과 자원 순환을 제도화해 창조 세계를 돌보는 영적 전투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자연의 시간을 정치로
두 번째 기사는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네팔과 중국 티베트 국경 지대의 빙하 붕괴와 대홍수는 인간이 멈춰 있다고 믿었던 자연의 시간이 실제로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인간은 생애 주기와 정치 주기 같은 감각적 시간에 갇혀 기후위기를 외면하거나 과소평가해 왔습니다. 재생에너지 확대처럼 방향이 분명한 해법이 있는데도, 많은 국가가 실효성 불분명한 기술적 도박이나 임시방편에 기대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역사학자 디페시 차크라바르티는 기후변화가 인간 중심 역사관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봅니다. 이제는 자연의 역사와 인간의 역사가 대화하고 통합되어야 합니다. 지구과학과 생물학, 세계사와 국사 교육을 함께 엮고, 모든 정책에서 기후와 자연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며 미래 세대와 비인간 존재의 생존권까지 계산에 넣어야 한다는 겁니다. 기후 재난이 일상이 된 시대, 교회의 회복력과 정치의 시간 감각은 결국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