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계획이 남긴 두 갈래 풍경
지난 10월 13일 행정안전부가 내놓은 제2차 중앙행정기관 이전 계획이 곳곳에서 파장을 만들고 있습니다. 수도권에 있는 중앙행정기관 44곳을 2031년까지 단계적으로 세종으로 옮기겠다는 구상인데요. 국가인권위원회는 내년 상반기,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와 개인정보보호원 등 5개 기관과 함께 세종의 한 건물에 입주하는 것으로 정해졌습니다.
같은 계획의 영향을 받는 곳은 인천도 마찬가지입니다. 2023년 인천에서 문을 연 재외동포청이 세종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면서, 인천시는 비게 될 공간을 어떻게 채울지 고민해야 할 처지가 됐죠. 시가 선택한 방식은 '떠난 뒤에 남길 것'을 먼저 준비하는 겁니다.
인천이 택한 '남는 것'의 전략
박찬대 인천시장과 김경협 재외동포청장은 22일 인천도시역사관에서 재외동포교육문화센터 조성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습니다. 연수구 인천타워대로에 있는 이 건물(부지 7,715㎡, 건물 8,443.92㎡)을 지하 1층·지상 4층 규모의 복합문화시설로 리모델링하는 게 골자입니다. 공사는 2027년에 시작됩니다.
센터에는 해외 이주 역사 유물 전시 공간과 디지털 아카이브가 들어섭니다. 차세대 동포를 위한 한국어와 역사·문화·예절 교육도 운영되고, 재외동포와 인천 시민이 함께하는 세미나와 문화교류 행사도 열립니다. 세계한인회장대회와 세계한상대회, 글로벌한인드림재단 사무국까지 유치한다는 계획인데요. 시와 재외동포청은 완공 이후 연간 5만 명 이상의 국내 방문객이 인천을 찾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박 시장은 "동포들이 고국에 오면 식구로 돌아오는 집"이라고 표현했고, 김 청장은 "700만 재외동포의 오랜 바람"이라고 의미를 뒀습니다. 청이 떠난 자리에 글로벌 한인 네트워크의 구심점을 남기겠다는 구상인 셈입니다.
독립성 논쟁, 국제기구가 나선 이유
문제는 인권위 쪽입니다. 호주·태국·요르단 등 26개국 국가인권기구가 모인 아시아·태평양국가인권기구포럼(APF)의 사마르 하지 하산 의장은 22일 이재명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이전 계획 재검토를 요청했습니다. 핵심은 유엔 파리원칙이 규정한 독립성입니다. 인권위가 정부 부처와 같은 건물에 들어가면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를 주장하는 이들이 부담 없이 찾아가기 어려워진다는 겁니다.
접근성 문제도 짚었습니다. 장애인과 노인, 이주민,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세종까지 오가는 데 추가 부담을 지게 된다는 지적입니다. 외교공관과 국제기구, 방한 인권 전문가와의 대면 교류가 줄어 국제협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담겼습니다. 하산 의장은 세계국가인권기구연합(GANHRI) 승인소위원회의 견해를 인용하며 공간적 근접성이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국내에서도 목소리가 나옵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인권위지부는 "독립기관인 인권위의 지위와 역할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조치"라며 전면 재검토를 촉구했습니다. APF는 지역균형발전의 취지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인권침해 피해자와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실질적 협의를 거쳐 대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하고 있는데요. 정부가 이 요청에 어떤 답을 내놓을지가 앞으로의 관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