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보다 생명을 외친 평생
2026년 6월 7일, 보건의료운동가 우석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가 향년 64세로 별세했습니다. 위암 투병 끝에 생을 마감한 고인은 평생 '돈보다 생명'을 외치며 아프고 힘없는 이들의 건강권을 지켜온 인물이었습니다.
1962년생인 우 공동대표는 1980년 서울대 의과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의료가 지녀야 할 사회적 역할에 깊이 관심을 가졌습니다. 1987년 인의협 창립에 참여하며 본격적으로 보건의료 운동에 뛰어들었고, 이후 줄곧 의료 공공성 확보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그는 건강을 시장의 상품이 아닌 누구나 누려야 하는 보편적 권리로 여겼고, 이 신념을 끝까지 지키며 활동했습니다.
현장과 정책을 잇던 실천가
우 공동대표는 진료실과 거리를 동시에 누빈 의사였습니다.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성수의원을 운영하며 지역사회 1차 의료를 책임졌고, 이곳을 노동자들의 병원으로 일궈냈습니다. 환자들의 곁을 묵묵히 지키면서도, 밖에서는 의료 제도 개선을 위해 끊임없이 투쟁했습니다.
정책 운동에서도 그의 발자취는 선명합니다. 1999년 의약분업 논쟁 당시 인의협 정책실장으로서 시민사회의 대안을 제시했고, 2001년 보건의료단체연합을 창립하며 진보 보건의료 단체들의 연대를 다졌습니다. 2008년 이후로는 의료민영화와 영리병원 도입에 맞서 싸웠고, 진주의료원 폐업 사태에서는 공공병원 수호 운동을 이끌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도 공공병상 확보와 취약계층 보호를 위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의사로서, 그는 언제나 환자와 현장의 편에 서 있었습니다.
공공의료의 길을 묻다
최근까지도 우 공동대표는 공공의료 개혁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의대 정원 확대와 의정 갈등이 격화되는 상황에서도, 단순히 숫자를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공공의대 설립과 지역의사제 도입을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이는 의료 인력의 양적 확대를 넘어, 소외된 지역에 의료 서비스가 안정적으로 공급되는 질적 전환을 꾀한 것이었습니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 의약품 지원과 현지 진료에 참여하는 등 평화와 인권 운동에도 발을 걸쳤고, 여러 저서를 통해 사회적 통찰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가 평생 지킨 '이윤보다 생명'이라는 가치는, 이제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중요한 과제로 남았습니다.
장례는 시민사회단체장으로 엄수되며,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었습니다. 고인은 경기도 마석모란공원 민주열사묘역에서 영면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