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넘긴 홈플러스, 납품업체들은 뒷전
홈플러스가 2,000억 원의 긴급 자금을 확보하며 파산 위기를 한숨 돌렸습니다.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와 MBK파트너스의 합의로 마련된 이 자금은 밀린 임금과 임대료 상환에 우선적으로 쓰이고 있는데요. 이 덕분에 임시 휴업에 들어갔던 67개 점포가 영업을 재개하며 정상화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회사 측의 회생이 반가운 소식은 아닌 이들이 있습니다. 홈플러스에 물건을 납품했던 1,000여 곳의 업체들이 대금을 받지 못한 채 공동 대응에 나섰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미수령한 물품 대금은 약 7,900억 원에 달하며, 재고 손실과 물류비 등을 포함하면 실질 피해 규모는 1조 원을 넘을 것으로 추산됩니다. 이들은 최근 '홈플러스 상거래 공익채권단 협의회'를 결성하고 법원과 정부에 변제를 촉구하며 민형사상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트레이더 조를 닮으려는 회생 전략
홈플러스가 선택한 회생 전략의 핵심은 미국 '트레이더 조' 모델을 벤치마킹하는 것입니다. 기존 대형마트의 방대한 상품 구성에서 벗어나 신선식품 중심으로 초압축 구색을 갖추는 방향인데요. 상품 가짓수를 기존 5만 개 수준에서 약 4,000개로 줄이고, PB 상품 비중을 80~90%까지 높여 효율적인 소형 매장 운영 체제로 전환하려 합니다.
이를 위해 제조사와 농가와의 직접 계약을 통한 소싱 구조를 도입하고, 롱테일 상품을 대폭 정리하는 선택과 집중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만 고객 유입을 위해 마진을 포기하는 미끼 상품들은 그대로 유지하기로 해서, 일부 핵심 전략은 기존 방식을 답습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풀어야 할 숙제가 산적합니다
회생 전략이 제대로 뿌리내리려면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습니다. 지난 서비스 중단 사태로 공급사와의 신뢰 관계가 크게 훼손되었고, 일부에서는 납품을 꺼리는 기류까지 감지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트레이더 조 모델 실행에 필요한 핵심 인력들이 대거 이탈한 상태라 새로운 상품 기획과 델리 운영에 물리적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물론 이번 위기가 오히려 체질 개선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으로 살아남은 인재들을 중심으로 조직을 재편하고, 경쟁사인 쿠팡이 규제 이슈로 흔들리는 틈을 타 반사이익을 노릴 수 있다는 겁니다. 다만 납품업체들의 피해가 해소되지 않은 채로 회생이 지속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입니다. 공급망 신뢰 회복 없이는 어떤 혁신 전략도 공허한 구호에 머물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