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 준비의 판이 바뀐다
퇴직연금 제도가 도입된 지 20년 만에 구조를 뒤바꾸는 대대적인 개편에 합의했습니다. 노사정은 지난 6일 공동선언문을 통해 모든 사업장에 퇴직연금 가입을 의무화하고,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기금형 퇴직연금’을 새롭게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이는 낮은 도입률과 쥐꼬리만 한 수익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겠다는 방침이죠. 특히 기존에는 회사가 퇴직금을 사내에 적립하거나 개인이 운용하는 ‘계약형’ 위주였지만, 이제는 국민연금처럼 외부 전문 기관이 통합 운용하는 ‘기금형’이 선택지로 추가됩니다.
이번 합의가 필요한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현재 퇴직연금 도입률은 전체 사업장의 26.5%에 불과합니다. 300인 이상 대기업은 90%가 넘지만, 5인 미만 영세 사업장은 10% 대에 머물러 있어 격차가 큽니다. 게다가 퇴직연금의 연평균 수익률은 2%대로, 은행 정기예금과 비슷한 수준이었습니다. 노후 자산을 불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성과였죠. 반면 공공기관이 운용하는 중소기업 대상 기금형 상품 ‘푸른씨앗’은 지난해 8.67%의 수익률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여줬습니다.
의무화로 체불 막고, 기금화로 수익률 높인다
개편의 핵심은 두 축입니다. 첫째는 퇴직급여의 ‘사외적립 의무화’입니다. 기업이 도산하거나 경영이 어려워져도 근로자의 퇴직금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사업장이 외부 금융기관에 퇴직금을 적립하도록 강제하는 조치입니다. 이는 전체 임금 체불액의 약 40%를 차지하는 퇴직금 체불 문제를 근본적으로 예방하기 위한 필수 장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다만 영세·중소기업의 부담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며, 정부의 지원 방안도 함께 논의됩니다.
둘째는 ‘기금형 퇴직연금’의 활성화입니다. 여러 기업의 퇴직금을 하나의 큰 기금으로 모아 전문 운용 기관이 투자하는 방식인데요. 호주나 영국에서는 연 7~8%대의 수익률을 보일 정도로 규모의 경제를 통한 효율화 효과가 큽니다. 기존 계약형과 병행해 운용되며, 가입자는 자신의 성향에 맞는 상품을 선택할 수 있게 됩니다. 이를 통해 개인 운용 부담을 줄이면서도 장기적으로 더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구조로 전환되는 겁니다.
남은 과제와 쏠리는 논란
하지만 이번 개편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 않습니다. 가장 큰 논란은 ‘증시 부양 동원’ 가능성입니다. 거대 자금이 시장에 유입되면 주식시장을 지탱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죠. 이에 대해 노사정 합의문에는 “가입자 이익과 무관한 목적으로 활용되지 않도록 한다”는 조항이 명시됐습니다. 또한 기금 운용의 투명성과 수탁자 책임을 강화해 이해상충을 방지하겠다는 방침도 함께 담겼습니다.
실제 성공 사례인 ‘푸른씨앗’은 출범 3년 만에 적립금 1조 6천억 원을 돌파하고 누적 수익률 27%를 기록하며 가능성을 입증했습니다. 가입 대상도 30인 이하 사업장에서 300인 미만으로 확대될 예정입니다. 이러한 공공 모델의 성과는 기금형 전환이 단순한 제도 변화를 넘어 실질적인 수익률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한편 1년 미만 근로자나 플랫폼 종사자 등 퇴직금 사각지대 해소는 아직 과제로 남았습니다. 노사정은 사회적 협의체를 통해 이들에 대한 적용 방안을 지속 논의하기로 했습니다. 20년 만에 이뤄낸 첫 사회적 합의는 출발점에 불과합니다. 이 합의가 구체적인 법안과 제도로 안착해 모든 근로자의 노후가 조금 더 든든해질 수 있을지, 그 행보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