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판, 빅테크가 먼저 투자했다
삼성전기가 엔비디아와 테슬라 등 글로벌 빅테크로부터 AI 반도체용 패키지 기판 생산라인 투자금을 확보했습니다. 총 투자 규모는 4조2700억원으로, 이 가운데 3조5천억~3조7천억원을 빅테크가 분담하는 구조입니다. 세종과 부산 사업장에 전용 라인을 구축하고, 이들 고객은 중장기적으로 고사양 기판을 우선 공급받게 됩니다.
배경은 AI 가속기 수요 폭증입니다. AI 칩은 고열과 미세 회로를 견뎌야 해 고성능 패키지 기판이 필수인데, 이를 양산할 수 있는 업체는 삼성전기와 일본 이비덴 등 소수에 불과합니다. 공급 병목이 커지자 빅테크가 공장 증설 비용을 직접 대는 방식으로 물량을 선점한 겁니다. 삼성전기로서는 4조원대 설비투자 부담을 덜면서 안정적인 수요처를 확보했습니다.
장기공급계약이 표준이 된 이유
이번 협력은 단순 납품을 넘어 장기공급계약, 즉 LTA 확산의 한 장면입니다. 삼성전기는 5월 이후 7건의 LTA를 맺어 누적 4조3000억원을 확보했고, 최근에는 메모리용 패키지 기판 3605억원 계약도 체결했습니다. 테슬라는 2029년부터 2033년까지 5년간 FC-BGA를 공급받고, 엔비디아도 다년간 물량을 받는 조건입니다.
AI 인프라 투자가 커질수록 부품 확보 경쟁은 반도체를 넘어 전력 설비까지 번지고 있습니다. LG이노텍은 엔비디아와 로봇 센싱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고, LS일렉트릭은 빅테크와 1689억원 규모 배전 솔루션 장기계약을 맺었습니다. 북미 배전반 납기가 30~40주로 길어진 만큼, 장기계약은 공급자와 수요자 모두에게 안전장치가 되고 있습니다.
기판 다음은 MLCC와 전력
부품 부족은 기판에 그치지 않습니다. 삼성전기의 AI 서버용 MLCC 일부 제품은 납기가 61주까지 늘었고, 업계에서는 소비자용 제품 가격이 25~30%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삼성전기는 필리핀 공장 가동을 앞당기며 대응에 나섰지만, 고용량 MLCC는 수율 확보에 시간이 걸려 단기간에 숨통이 트이기는 어렵다는 관측입니다.
삼성전기는 모바일 부품 중심에서 AI 기판과 전장용 MLCC로 체질을 바꾸는 중입니다. 다만 특정 빅테크에 대한 의존도가 커질 수 있고, 증설 속도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 수익성 개선도 지연될 수 있습니다. AI 공급망 경쟁이 이제 생산능력과 자금력을 함께 겨루는 국면으로 넘어간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