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은 했지만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산 원유와 천연가스 수입 상위 5개국에 최고 100% 관세를 부과하는 '린지 그레이엄 러시아·이란 제재법'에 서명했지만, 시행 직전 대부분 조항을 면제하는 행정명령을 내렸습니다. 이 법은 러시아의 에너지 수익을 끊어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을 압박하려는 목적으로 상원에서 86대 11의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됐는데요. 서명과 동시에 사실상 법의 핵심이 무력화된 셈입니다.
면제 배경에는 배럴당 110달러를 넘어선 국제유가와 미국 내 경유값 급등이 자리합니다. 중간선거를 앞두고 유가 불안이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하자, 에너지 가격 안정을 우선시한 겁니다.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은 이번 조치가 "전쟁을 끝내기 위한 당근"이라며 러시아가 분쟁을 줄이면 에너지 휴전이나 디젤 수출을 허용하는 유인책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당근인가 굴복인가
그러나 공화당 내부에서도 비판이 터져 나왔습니다. 존 코닌 상원의원은 "린지가 살아 있었다면 경악했을 것"이라며 "미국 국가 안보에 무모한 일"이라고 했고, 톰 틸리스 의원은 "무책임을 넘어선 결정"이라며 "푸틴에게 굴복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민주당 척 슈머 원내대표도 "트럼프가 푸틴에게 최고의 생일 선물을 안겨줬다"고 공격했습니다. 제재법을 만든 린지 그레이엄 전 의원의 여동생이자 중간선거 공화당 후보인 달린 그레이엄 상원의원조차 "휘발유 가격을 낮추려면 러시아 압박을 계속해야 한다"며 면제에 반대했습니다.
국제 반응도 엇갈립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번 유예가 "푸틴을 멈출 방법이 아니다"라고 밝혔고, 러시아 대통령 특사 키릴 드미트리예프는 "중요하고 진정으로 역사적인 순간"이라며 환영했습니다.
중간선거 앞둔 정치적 부담
사실 트럼프 대통령의 대러 유화 행보는 이번 면제만이 아닙니다. 백악관 특사 스티브 윗코프와 사위 재러드 쿠슈너가 EU와 우크라이나 당국자 회의에서 러시아산 가스 구매 재개를 제안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 협의해 미국에 러시아산 경유를 공급하겠다는 계획까지 내놨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을 위한 압박 수단이 오히려 러시아와의 에너지 협력으로 바뀌는 모습입니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결정이 중간선거와 연방정부 경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유가 안정이라는 실익을 얻더라도, 안보와 외교적 신뢰를 훼손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