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삼겹살에 모인 1경 원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닷새간의 한국 일정을 마치고 돌아갔습니다. 이번 방한에서 그는 재계 총수들과 홍대입구 삼겹살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이고, 평양냉면집에서 정의선 현대차 회장과 회동하며 이례적인 친근감을 과시했습니다.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의장이 함께한 이른바 '삼소 회동'은 참석자 기업 시가총액 합계만 약 1경 원에 달해 화제가 되었는데요. 하지만 이런 파격적인 행보 이면에는 한국을 아시아 AI 핵심 거점으로 삼겠다는 엔비디아의 치밀한 사업 전략이 깔려 있습니다.
기가와트를 겨냥한 구체적 동맹
젠슨 황은 이번 방한에서 말뿐인 약속이 아닌 구체적인 협력안을 쏟아냈습니다. 현대차그룹은 새만금에 약 9조 원을 들여 AI 데이터센터와 로보틱스 벨류체인 거점을 구축하기로 했고, 네이버는 엔비디아와 손잡고 1GW 규모의 기가와트급 AI 팩토리를 지향하며 2030년 매출 20조 원을 제시했습니다. LG는 피지컬 AI와 데이터센터 냉각 솔루션으로 협력 폭을 넓혔고, SK하이닉스와는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파트너십을 공고히 했습니다. 이처럼 한국 주요 기업들은 제조와 플랫폼, 반도체의 강점을 엔비디아의 GPU 생태계와 결합하며 '피지컬 AI' 시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이런 밀착은 단기적으로 거대한 성장 동력이 됩니다. 네이버는 B2B 중심의 네오 클라우드 사업을 본격화하려 하고, 현대차는 자율주행과 로보틱스에서 필요한 컴퓨팅 파워를 확보하는 길을 열었습니다. 특히 소버린 AI 수요가 급증하는 아시아 시장을 겨냥할 때, 엔비디아와의 동맹은 현실적으로 가장 빠른 지름길입니다.
'탈엔비디아' 시대를 준비해야 하는 이유
하지만 모든 기업이 같은 길을 가는 건 아닙니다. 네이버가 엔비디아와 AMD를 기반으로 인프라 경쟁력을 키우는 동안, 카카오는 오픈AI와 구글을 선택해 카카오톡 기반 서비스 경험을 고도화하고 있습니다. 이는 AI 생태계의 다양성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분산이라 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엔비디아에 쏠린 의존도는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빅테크가 자체 칩 개발로 '탈엔비디아'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한국 기업들이 GPU 임대와 인프라 구축에만 집중할 경우 고부가가치의 설계 주도권을 놓칠 수 있습니다. 사실 일각에서는 한국이 고급 하청 기지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합니다. 이에 정부는 월드 모델과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 등 원천 기술 확보에 340억 원을 투입하며 국산화 전략을 가동하고 있습니다.
결국 젠슨 황이 남긴 환한 미소 뒤에는 냉정한 손익계산서가 놓여 있습니다. 엔비디아와의 동맹이 미래를 여는 열쇠가 되려면, 협력의 기회를 지렛대 삼아 독자적인 반도체와 모델 기술을 키우는 병행이 필수적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화려한 성지 순례가 이어져도 AI 주도권은 여전히 먼 나라 이야기로 남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