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와 달랐던 한국인의 육류-암 연구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가 붉은 고기를 발암 가능 물질로 분류한 이후, 국내에서도 육류 섭취에 대한 경계심이 커졌습니다. 하지만 최근 한국인 14만 7,562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대규모 연구 결과는 기존 통념과는 다른 흥미로운 결론을 제시했습니다. 서울대병원 박민선 교수와 이대서울병원 유인선 교수 공동 연구팀의 결과는 국제학술지 '프런티어스 인 뉴트리션'에 게재되었는데요.
분석 결과, 남성이 붉은 고기를 가장 많이 섭취한 그룹은 가장 적게 섭취한 그룹보다 위암 사망 위험이 52% 낮게 나타났습니다. 반면 여성은 내장육을 많이 섭취한 경우 유방암 사망 위험이 2.57배, 췌장암 사망 위험이 1.83배 높았습니다. 단순히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보다 어떤 종류의 고기를 먹었는지, 그리고 성별이 암 사망 위험을 가르는 더 중요한 기준이라는 점이 드러난 겁니다.
한국 식문화가 만든 다른 양상
이번 연구가 주목받는 이유는 서구권 중심의 연구와 다른 결과를 보였기 때문입니다. 연구팀은 한국인의 특유한 식습관이 이런 차이를 만들어냈을 가능성을 제기했는데요. 우리나라는 소고기보다 돼지고기 소비 비중이 높고, 염장이나 훈제보다는 구이 형태로 섭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추나 깻잎, 마늘 등 다양한 채소와 함께 먹는 문화도 이런 결과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되었습니다.
남성의 붉은 고기 섭취와 위암 사망 위험 감소는 이런 한국형 식문화가 반영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다만 같은 연구에서 남성의 가공육 섭취는 직장암 사망 위험을 2.45배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육류 자체를 문제 삼기보다는 가공 정도와 섭취 방식에 따른 차이가 훨씬 중요하다는 뜻이죠. 여기에 연구 대상자 중 붉은 고기를 많이 섭취한 집단이 상대적으로 사회경제적 수준이 높아 건강검진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변수입니다.
성별로 달라지는 위험도와 주의할 점
이번 연구는 내장육 섭취와 여성의 유방암 및 췌장암 사망률 상승이 연관된다는 점을 처음으로 보고한 결과입니다. 연구팀은 곱창이나 간 같은 내장육에 포함된 높은 지방과 중금속 성분이 나이가 들면서 지방이 축적되기 쉬운 장기에 문제를 일으켰을 가능성을 설명했습니다. 특히 60세 이상이거나 체질량지수가 25 미만인 저체형 비흡연 여성에게서 이런 경향이 뚜렷하게 관찰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관찰 연구라는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조리 방법이나 장기적인 식습관 변화를 완전히 반영하지 못했고, 육류 섭취와 암 사망률 사이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결국 붉은 고기가 무조건 해롭다거나 무조건 안전하다는 식의 단순한 판단은 위험하다는 것이죠. 앞으로 인종과 문화적 특성을 고려한 성별 맞춤형 영양 정책과 추가 연구가 필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