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림의 날, 전국이 함께한 추모의 시간
2026년 8월 14일은 고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처음 공개 증언한 지 35년이 되는 날입니다. 전국 각지에서 열린 아홉 번째 기림의 날 행사에는 많은 시민이 참여해 피해자들의 아픔을 기억했는데요. 서울 용산 백범김구기념관에서는 정부 공식 기념식이 열렸고, 아흔일곱 살 이용수 할머니가 참석해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종로구에서는 장대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130여 명이 나비문화제에 동참했고, 세종 호수공원에서는 6년 만에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문화제가 열렸습니다. 안양 평촌중앙공원에서는 200여 명이 모였고, 예산과 서산, 화성, 광명, 천안 등에서도 주민과 학생들이 함께하는 추모 행사가 이어졌습니다. 특히 생존 피해자가 이제 5명만 남은 상황에서 이번 기림의 날은 단순한 추모를 넘어 역사를 어떻게 지속할 것인지를 묻는 계기가 됐습니다.
몸으로 기억하고 기술로 남기는 새로운 전승
올해 행사에서는 단순히 참관하는 것을 넘어 직접 참여하는 방식이 두드러졌습니다. 세종에서는 청년 도슨트가 사진전을 해설하고, 중학생이 무대에 서서 시를 낭독하며 역사를 몸으로 익혔다고 소감을 밝혔는데요. 예산에서는 삽교고등학교 학생이 피해자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했고, 화성에서는 어린이가 직접 쓴 편지를 낭독하며 아픈 역사를 세대에 걸쳐 전했습니다. 안양에서는 2017년 시민 성금으로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 건립 9주년을 맞아 생성형 인공지능 부문을 새로 도입한 작품 공모전이 열렸고, 종이 소녀상 만들기 체험 부스가 시민들의 호응을 얻었습니다. 살풀이 공연이나 한국무용, 트럼펫 연주 등 다양한 예술 활동도 곳곳에서 이어졌습니다. 젊은 세대가 기억의 주체가 되고, 디지털 기술이 평화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개체로 활용되는 모습은 기림의 날이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남은 과제와 정부의 책임
이재명 대통령은 기림의 날을 맞아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을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밝혔습니다.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법 개정을 통해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에 엄정 대응하기로 했고, 여성인권평화재단 설립을 통해 아시아 지역 인권 연대를 강화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서산 평화의 소녀상 보존회 등 시민단체들은 외교적 고려를 앞세워 가해국에 대한 구체적 조치가 미흡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보존회는 2015년 한일 합의의 문제점을 청산하고 법적 배상을 받아낼 것을 정부에 촉구했는데요. 진정한 사죄와 법적 배상, 그리고 올바른 역사 교육이야말로 피해자들이 진짜 원하는 평화의 길입니다. 과거 피해자들이 머물렀던 나눔의 집에는 이제 기념 흉상 22개가 남아있고, 생존자가 5명으로 줄어든 지금 기억은 더 이상 개인의 증언에만 머물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지켜야 할 공동의 역사가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