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 멈춘 원전, 일식 덮치는 유럽 전력망
2026년 8월, 유럽 대륙이 기록적인 폭염과 가뭄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오는 12일 늦은 오후에는 일식까지 예고되어 있어 전력망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데요. 스페인 북부와 포르투갈 북동부에서는 개기일식이, 영국과 프랑스, 이탈리아 북부에서는 태양의 90%가 가려지는 부분일식이 관측될 예정입니다. 이미 불안정한 전력 수급 상황에서 태양광 발전이 줄어들면서 유럽 전역에 새로운 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프랑스 전력회사 RTE는 일식이 정점에 달하는 저녁 7시 30분부터 약 2시간 동안 유럽 전역에서 최대 9.3GW의 전력 공급이 사라질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이는 원전 9기가 동시에 멈추는 것과 맞먹는 규모입니다. 스페인 전력망 운영사도 태양광 공급이 최대 5GW 줄어들 수 있다고 경고했는데, 이는 해당국 평균 전력 수요의 13%에 해당하는 양입니다. 이미 바닥난 전력 상황에서 순간적인 공급 감소는 전력망의 안정성을 흔드는 심각한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말라버린 강과 멈춰선 발전소
이번 위기는 하루아침에 찾아온 게 아닙니다. 유럽 전역에 이어진 폭염과 가뭄으로 다뉴브강과 라인강 등 주요 하천의 수위가 급격히 낮아졌는데요. 헝가리의 팍스 원전은 다뉴브강 냉각수 확보가 어려워져 1982년 상업 운전 시작 이후 44년 만에 처음으로 전면 가동 중단되는 사태를 겪었습니다. 루마니아의 체르나보다 원전도 수위 저하로 위기를 맞아 강바닥 암반을 폭파해 물길을 돌리는 긴급 작업을 벌였고, 프랑스와 폴란드에서도 발전소 가동이 멈춰 섰습니다.
수력발전마저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전력 수출국인 노르웨이의 저수지 수위는 3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강이 마르자 불가리아에서는 고대 로마 교량의 기초가, 세르비아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 군함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는 기이한 풍경도 연출되었습니다. 헝가리 정부는 전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부다페스트 국회의사당과 부다성 등 상징적 야경 조명을 소등하고 열차 운행을 줄이는 등 절전 총력전에 나섰습니다.
취약해진 에너지망과 향후 과제
이번 사태는 유럽 에너지 인프라의 취약점을 여실히 드러낸 셈입니다. 기후 위기가 심화하면서 원전과 화력, 수력, 태양광까지 모든 주요 발전원이 동시에 위협받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하천 수위에 직접 의존하는 관류냉각 방식 원전의 리스크가 크게 부각되고 있는데요. 이런 가운데 한국수력원자력이 수주한 체코 두코바니 원전 사업은 순환식 냉각탑 방식을 채택해 수위 변화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다만 한수원은 내륙 대형 냉각탑 건설 실적이 없어 향후 사업 이행 능력이 핵심 변수가 될 전망입니다.
당장 오는 12일 일식을 앞두고 유럽 각국은 전력망 안정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폭염과 가뭄이 계속될 경우 단기적인 대응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습니다. 유럽이 겪고 있는 전력 위기는 단순한 천재지변을 넘어 에너지 정책과 기후 변화 대응 체계를 전면 재검토해야 하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