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서 시작된 불길
7월 8일 밤 10시 57분경 서울 은평구 갈현동의 한 3층 빌라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고로 집 안에 있던 초등학교 2학년 9살 오빠와 1학년 8살 여동생이 숨을 거뒀습니다. 소방당국은 신고 접수 후 1분 만에 출동했고 50분 만에 불을 껐지만, 아이들을 구하지 못했는데요. 당시 아이들은 안방에서 잠들어 있다가 거실에서 시작된 불길을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고가 난 건물은 1986년에 지어진 노후 다세대주택으로,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 대상이 아니어서 관련 소방 시설이 갖춰지지 않았습니다. 경찰과 소방은 합동 감식을 벌여 거실 내 누전이나 단선 등 전기적 요인으로 발화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으며, 국립과학수사원에 증거물 감정을 의뢰했습니다.
보호자 부재 중 반복되는 참변
이번 참변은 낯선 일이 아닙니다. 지난해 6월과 7월 부산의 노후 아파트에서 어린이들이 숨진 화재에 이어, 올해 2월에는 서울 은마아파트에서도 비슷한 인명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모두 보호자가 집을 비운 사이 취약한 주거 시설에서 아동이 희생된 사고였는데요. 취약한 야간 돌봄 공백과 노후 주거 시설의 안전 미비가 겹치면서 비극이 반복되고 있는 겁니다.
희생된 남매는 아버지가 이혼 후 할머니 도움을 받아 홀로 키우던 아이들이었습니다. 사고 당시 아버지는 개인 용무로 외출 중이었고, 할아버지는 깊은 상실감 속에서 손주들의 죽음을 함께 슬퍼해 달라고 호소하며 외출했던 아들을 무책임한 부모로 보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경찰은 현재까지 아동학대나 범죄 혐의점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대책은 현장에서 통할까
사고 이틀 뒤인 7월 10일,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이 직접 화재 현장을 찾았습니다. 윤 장관은 은평소방서장으로부터 피해 현황과 합동감식 결과를 보고받았으며, 지난해 9월 정부가 발표한 '부산아파트 화재 아동 사망사고 재발방지 대책'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전면 재점검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에 행정안전부는 노후 공동주택을 대상으로 긴급 안전점검에 나섰습니다. 단독경보형 연기감지기 보급 확산과 아동 대상 화재안전교육, 야간 돌봄 공백 해소 방안 등을 집중 점검하고 있으며, 제도적 미비점을 보완한 추가 대책을 조속히 발표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대책은 수립됐으나 현장에서 실효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이번 사고가 드러낸 가장 뼈아픈 문제입니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영원히 멈춘 갈현동 빌라 앞에서, 유족과 이웃들은 아직도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고 똑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려면, 제도 보완과 함께 취약계층에 대한 실질적인 돌봄망 구축이 뒷받침돼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