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 독립성 지킨 대법원, 트럼프 법적 공방 잇따라 제동
미국 연방 대법원이 하루 사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두 가지 중요한 법적 시도에 선을 그었습니다. 연방준비제도(연준) 이사 해임과 1990년대 성추행 사건 배상 판결이 핵심인데요. 두 사건 모두 대법원이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행정부의 권한 확대 시도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주목됩니다.
연준 이사 해임 막은 '독립성의 성곽'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연준의 리사 쿡 이사 관련 판결이었습니다. 대법원은 5대 4의 초박빙 의견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쿡 이사 즉각 해임 요청을 기각했습니다. 소송이 끝날 때까지 직위를 유지하게 한 하급심 결정을 그대로 유지한 건데요.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쿡 이사가 주택담보대출 과정에서 문제를 일으켰다며 해임을 통보했습니다. 이는 연준 역사상 대통령이 이사를 해임하려 한 첫 사례였고, 월가에서는 기준금리 인하를 압박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는 관측이 나왔죠.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이번 판결에서 연준이 지닌 '독특한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연준이 실제로 독립적일 뿐 아니라 독립적으로 보이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는데요. 만약 대통령이 마음대로 이사를 해임할 수 있다면, 이사들은 과거 판단에 대한 보복을 의식해 기준금리 같은 고유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워질 겁니다. 다만 연준을 제외한 연방거래위원회(FTC) 등 다른 독립 규제 기관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인사 권한을 폭넓게 인정하면서 대통령의 통제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결정을 내린 점은 의미심장합니다.
30년 전 성추행 의혹, 77억 원 배상 확정
같은 날 대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또 다른 법적 부담을 확정했습니다. 1996년 뉴욕 백화점 탈의실에서 일어났다는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패션 칼럼니스트 E. 진 캐럴에게 500만 달러(약 77억 원)를 배상하라는 원심 판결에 대한 상고를 기각한 것입니다.
2023년 뉴욕 연방지방법원 배심원단은 성폭행 혐의는 직접적인 증거가 부족하다고 봤지만 성추행 사실은 인정했고,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부인한 발언이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1심과 2심을 거쳐 대법원까지 상고를 기각하면서 30년 전의 사건에 대한 법적 책임이 최종적으로 확정된 셈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결정을 '사법의 무기화'라며 강하게 비판했는데요. 사실 이 500만 달러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별도의 명예훼손 소송에서 1심과 2심이 각각 8,330만 달러(약 1,285억 원)의 배상을 명령했고, 트럼프 측은 이 사건에 대해 추가 상고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두 사건의 배상금에 이자까지 더해지면 총액은 1억 달러를 훌씬 넘을 것으로 보입니다.
행정부와 사법부의 긴장 속 전망
이번 판결들은 대법원이 여름 휴회를 앞두고 중요한 결정을 연달아 내고 있다는 흐름 속에서 나왔습니다. 지난 2월 관세 부과 관련 긴급권한에 제동을 건 데 이어, 이번에는 연준 독립성과 개인적 법적 책임 문제까지 판단했는데요.
특히 연준 이사 해임 관련 판결은 향후 12개 다른 독립 기관에 대한 대통령의 통제력을 강화하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미국 행정 체제에 미칠 영향이 클 것입니다. 연준만큼은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는 대법원의 메시지는 분명하지만, 다른 규제 기관들의 운명은 이제 대통령의 손에 더 많이 달리게 되었습니다. 이번 주 중으로는 트럼프 대통령의 출생시민권 금지 행정명령 적법성에 대한 판결이 나올 예정이라, 미국 정치의 뜨거운 여름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