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 맞선 민주화 상징, 방글라데시 첫 여성 총리 칼레다 지아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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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달 전 수정 · 2025년 12월 31일 오전 2:18

발행: 2025년 12월 31일 오전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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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최초의 여성 총리 칼레다 지아가 12월 30일 향년 80세로 별세했다. 남편 암살 후 BNP를 이끌며 군사 독재에 맞섰고, 1991년 총리 취임 후 민주화와 경제 발전을 이끌었다. 라이벌 셰이크 하시나와의 경쟁은 방글라데시 정치사의 한 축이었다. 부패 혐의 등 논란도 있었으나, 민주화 상징으로 기억될 것이다. 향후 BNP는 아들 타리크 라흐만이 지도자로 부상할 전망이다.

독재에 맞선 민주화의 상징

방글라데시 최초의 여성 총리이자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었던 칼레다 지아 전 총리가 12월 30일 향년 80세로 별세했다. 과도 정부는 3일간의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했고, 다카 국회의사당 앞에서 장례 기도가 열릴 예정이다. 인도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그녀의 공헌을 기리며 애도한다”는 성명을 내는 등 국제사회도 깊은 슬픔을 표했다.

칼레다 지아는 1945년 방글라데시 파르자트에서 태어났다. 1977년부터 1981년까지 대통령을 지낸 지아우르 라흐만의 부인으로, 1981년 남편이 암살된 후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들었다. 1984년 남편이 창당한 방글라데시 민족주의당(BNP)의 지도자가 된 그녀는 군사 독재에 맞서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다. 1990년 에르샤드 정권이 무너지고 치러진 1991년 총선에서 BNP는 승리했고, 칼레다 지아는 방글라데시 최초의 여성 총리로 취임했다. 이슬람 국가에서 민주 정부를 이끈 두 번째 여성 지도자라는 기록도 함께 세웠다.

두 여인, 한 나라의 정치사

칼레다 지아의 정치 인생은 셰이크 하시나 전 총리와의 경쟁으로 점철됐다. 하시나 전 총리는 방글라데시 독립의 아버지 무지부르 라흐만의 딸로, 아와미 연맹을 이끌었다. 두 사람은 30년 가까이 방글라데시 정치의 양대 산맥을 이루며 정권을 주고받았다. 1996년 총선에서 하시나에게 정권을 넘겨준 칼레다 지아는 2001년 다시 집권에 성공했으나, 2006년 임기 만료 후 정치적 혼란이 가중되면서 군부의 개입을 초래했다. 이후 부패 혐의로 기소되어 투옥되기도 하고, 가택 연금 상태에서 건강이 악화됐다. 2024년 하시나 정권이 실각하면서 자유의 몸이 되었고, 올해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녀의 재임 기간에는 대통령제를 의원내각제로 전환하고, 부가가치세 도입, 외국인 투자 제한 해제, 초등교육 의무화 등 개혁 정책을 추진했다. 경제 성장률도 꾸준히 상승해 5~6%대를 기록하는 등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정치적 반대 세력과의 갈등이 심화되었고,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과의 관계 등으로 비판도 받았다. 두 여인의 경쟁은 방글라데시 민주주의 발전에 긍정적 동력이 되기도 했지만, 때로는 극한 대립으로 정치 불안을 키우기도 했다.

정치적 유산과 향후 전망

칼레다 지아의 타계는 방글라데시 정치에 큰 공백을 남겼다. BNP는 지도자 선출을 앞두고 있다. 그녀의 장남 타리크 라흐만이 최근 방글라데시로 귀국하며 차기 지도자로 주목받고 있다. 타리크는 영국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가 어머니의 건강 악화 소식을 듣고 돌아왔으며, BNP 내에서도 지지 기반을 넓혀가고 있다. 과도 정부의 무함마드 유누스 최고고문은 “국가의 위대한 수호자를 잃었다”며 칼레다 지아를 추모했다.

한편, 하시나 전 총리는 아들 사지브 워제드를 통해 “그녀의 죽음이 방글라데시 안정에 타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측 지지자들 사이에선 갈등이 재점화될 가능성도 엿보이지만,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칼레다 지아의 민주주의에 대한 헌신을 기리고 있다.

칼레다 지아는 독재에 맞서 싸우고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상징적 인물로 기억될 것이다. 그녀의 삶과 정치적 유산은 방글라데시뿐 아니라 전 세계 여성 지도자들에게도 영감을 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