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계 부담을 이유로 기록을 지운 경찰관
제주에서 근무하던 경찰관이 수백 건의 실종 신고를 허위로 종결하고 기록까지 삭제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파문이 커지고 있습니다. 부경장으로 알려진 이 경찰관은 지난해 3월부터 7월까지 약 300건에 가까운 실종 신고를 자의적으로 처리한 혐의로 구속됐는데요. 처음에는 성인 실종자가 많아 인계 절차가 번거롭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전수 조사 결과 아동 실종 기록까지 비정상적으로 삭제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이 경찰관이 삭제한 15건의 기록 중에는 18세 미만 보호 대상자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실종자 프로파일링 시스템에서는 아동의 경우 사망 확인이나 보호자 요청 없이는 절대 삭제할 수 없는데, 이 규정이 무시된 겁니다. 더욱이 추가로 10건의 허위 종결 사례가 확인돼 경찰은 수사 범위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사건마다 달라지는 치밀한 수법
이 경찰관은 단순히 기록을 없앤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수법을 달리 쓴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30대 여성 장미란 씨 사건에서는 교통사고 사망 코드를 입력한 뒤 탄로가 날까 봐 관련 자료를 모두 지웠고, 다른 60대 남성 사건에서는 신고자가 동료와 상담한 사실이 있어 기록을 남겨두되 소재 발견으로 허위 입력하는 식으로 덜미가 잡히지 않으려 했습니다.
장미란 씨는 실종 신고 100여 일 만에 숨진 채 발견됐는데, 발견 당시 사체가 부패해 정확한 사인 규명이 어려웠습니다. 이와 관련해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피살 가능성을 제기하며 경찰 수사를 강하게 비판했고, 유족 측은 국가배상 소송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경찰의 허위 종결이 실종자의 생명과 직결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쌓인 업무와 무너진 신뢰
이번 사건의 배경에는 경찰 실종팀의 과도한 업무 부담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실제로 전국 미해제 실종자의 92% 이상이 성인으로, 대부분 가출인으로 분류됩니다. 성인 실종자는 아동이나 장애인과 달리 실종경보 발령 등 법적 근거가 부족해 초동 수사가 늦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찰 내부 프로파일러들은 이번 범행이 누적된 업무 피로와 책임감에서 비롯된 업무 태만적 동기가 주된 배경이라고 분석했습니다. 하지만 제도적 미비가 개인의 일탈을 합리화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보호 대상자 기록까지 삭제했다는 점은 경찰의 존재 이유를 흔드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유족들의 법적 대응이 이어지는 가운데, 실종자 수사 체계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