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급락이 전하는 종전의 신호
국제 유가가 이틀 연속 가파르게 내리며 중동의 판도 변화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12일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브렌트유는 배럴당 87.33달러에, 뉴욕상업거래소의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84.88달러에 마감했는데요. 각각 3월과 4월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겁니다. 중동 분쟁이 격화될 때마다 100달러를 넘나들던 유가가 한순간에 80달러대로 주저앉은 셈입니다. 시장은 미국과 이란의 전쟁 종식이 코앞에 왔다는 신호를 유가에 먼저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번 하락의 핵심 배경에는 잠정 합의에 도달한 양해각서(MOU)가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주말이나 월요일 중 서명식이 가능하다고 밝혔고,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도 어느 때보다 타결에 근접했다고 화답했습니다. 특히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 기대감이 시장의 불안 심리를 크게 가라앉혔습니다.
MOU 안팎의 세밀한 줄다리기
합의의 골자는 이란의 핵 포기와 미국의 경제 보상을 단계적으로 연결하는 구조입니다. 이란은 핵 프로그램 해체와 핵물질 폐기를 약속하는 대신, 이행 성과에 따라 동결 자금 해제와 제재 완화를 받게 됩니다. 파키스탄이 중재를 맡은 가운데 G7 정상회의 기간 중 서명이 이뤄질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는데요. 다만 양측의 해석은 조금씩 엇갈리고 있습니다. 미국은 이란이 무기한 핵 포기를 약속했다고 강조하는 반면, 이란은 핵 문제를 후속 협상으로 미루고 국내 희석 방식을 고수하며 선제적 자금 해제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막판까지 신경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협상의 전망은 여전히 밝게 점쳐집니다. 미 고위 당국자는 서명 가능성을 80~85%로 내다봤고, 이란 최고지도자의 승인도 거쳤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하지만 서명만으로 모든 게 끝나는 건 아닙니다. 기술적 세부 사항을 다룰 60일간의 2단계 협상이 남아있고, 호르무즈 해협의 관리 체계를 둘러싼 이란의 주장도 기존과는 다른 방향으로 설정되고 있습니다.
평화의 문턱, 남은 변수는 무엇인가
종전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가운데, 이스라엘의 입장은 또 다른 변수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협안 내용을 사전에 전혀 통보받지 못했다며 당혹감을 표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총리로 있는 한 이란의 핵무기 보유를 절대 용인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고, 필요시 자위권을 행사하겠다는 의지도 분명히 했습니다. 과거 트럼프 대통령의 중단 요구를 무시했던 전례를 볼 때, 종전 이후 중동 정세가 순탄하게 흘러가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한국 경제에도 이번 합의는 중요한 변곡점이 될 전망입니다. 그동안 원·달러 환율이 1561원까지 치솟는 등 고유가·고환율·고금리의 삼중고에 시달렸는데, 유가 안정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우리에게 단비 같은 소식입니다. 다만 미국의 5월 소비자물가지수와 고용 지표가 여전히 뜨거운 탓에 연준의 긴축 기조가 쉽게 꺾이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중동 리스크가 한숨 돌린다 해도, 한국 경제의 향방은 여전히 미국의 통화정책과 국내 가계부채 흐름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