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정세 악화로 원유 수급에 비상이 걸린 일본이 총력 대응에 나섰습니다. 원유 수입의 90% 이상을 중동에 의존하는 일본은 미국과 이란의 전쟁 장기화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될 가능성에 직면했고, 이에 비축유를 방출하고 조달처를 다변화하는 한편, 탈탄소 정책과는 반대 방향인 석탄 화력발전을 확대하는 초비상 체제에 들어갔습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일본 에너지 안보에 비상
지난 2월 말, 미국과 이란의 전쟁 발발 직전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한 유조선 한 척이 도쿄만에 도착했습니다. 이 유조선은 현재 일본으로 향하는 마지막 중동산 원유 수송선으로 알려지면서, 에너지 공급망에 대한 우려를 극대화시켰습니다. 일본 정부는 자국 소비량의 약 45일분에 해당하는 민간 및 국가 비축유를 시장에 방출하는 등 긴급 수급 안정화에 나섰지만, 원유 수입 경로의 70%가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한다는 점이 가장 큰 취약점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이란의 해협 봉쇄가 지속되면 중동에서의 원유 공급은 사실상 차단될 수밖에 없는 구조죠.
비축유 방출에서 석탄발전까지, 총력 대응
이 위기에 대응해 일본 정부가 내놓은 해법은 다각적입니다. 첫째는 조달처 다변화입니다. 중앙아시아나 남미 등 과거 수입 경험이 있는 지역에서 원유를 들여오는 방안을 검토 중인데요. 일본 기업 인펙스는 이미 중앙아시아산 원유 일부를 자국에 우선 공급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수송 기간이 길고 정제 설비 투자가 필요해 단기간에 대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둘째, 그리고 가장 즉각적인 조치는 석탄 화력발전의 확대입니다. 정부는 2026년 4월부터 1년간, 비효율적인 석탄 화력발전소에 대한 가동률 제한 규정을 일시적으로 해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조치로 연간 약 53만 톤의 LNG 발전량을 석탄으로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호르무즈해협을 통해 조달해야 하는 LNG의 13%에 해당하는 양입니다. 석탄은 중동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낮아 단기 공급 불안에 대응할 수 있는 안전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습니다.
탈탄소와의 충돌, 장기적 균형은?
하지만 이 같은 긴급 조치는 일본이 추진해 온 탈탄소 정책과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석탄 화력발전소 가동률을 높이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불가피하게 증가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시아 각국이 비슷한 에너지 대체 수단으로 석탄을 찾으면서 고품질 석탄 가격은 이미 사태 전보다 16%나 급등했습니다. 시장 전문가들은 연료 전환 수요가 지속되면 석탄 가격 상승 압력이 더욱 커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로서는 단기적인 에너지 안보 확보와 장기적인 온실가스 감축 목표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난제에 직면한 셈입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일본에 원유 지원을 요청했지만, 정부는 자국 내 공급 안정을 최우선으로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입니다.
일본의 이번 위기 대응은 에너지 수입원이 극도로 집중된 국가가 직면할 수 있는 리틱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비축유 방출과 같은 즉각적인 조치와 더불어 조달처 다변화라는 중장기 과제를 동시에 추진해야 하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은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하는 새로운 수송로 확보나 정제 설비 투자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며, 석탄으로의 회귀는 환경 목표와의 갈등을 낳습니다. 세계적인 에너지 확보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일본이 어떻게 에너지 안보와 탄소 중립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