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 테이블에 오른 '가스 카드'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을 둘러싸고 예상 밖의 카드가 등장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유럽에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을 다시 늘리고 우크라이나를 지나는 가스관을 재가동하는 방안을 제안한 겁니다. 스티브 윗코프 특사와 재러드 쿠슈너가 우크라이나·유럽 당국자들과의 회의에서 이 구상을 꺼냈고, 백악관은 러시아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는 경제적 유인책이라고 설명합니다.
미국 측 논리는 명확합니다. 가스 거래가 재개되면 유럽은 에너지 가격을 낮추고, 우크라이나는 가스관 통행료 수입을 되찾는다는 겁니다. 문제는 이 제안이 지난 몇 년간 미국과 유럽이 함께 밀어붙인 대러 에너지 압박 기조와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점입니다.
4년 걸려 줄인 의존도, 되돌리나
유럽연합은 2021년 45%였던 러시아산 가스 비중을 지난해 13%까지 낮췄고, 내년까지 수입을 완전히 끊겠다는 계획을 세워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나온 재수입 제안이라 유럽 대표단의 반응은 당혹감에 가까웠습니다.
독일의 반발이 특히 강합니다. 메르츠 총리의 국가안보보좌관은 "우리는 다시 러시아에 의존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공급이 언제든 정치적 무기로 쓰일 수 있다는 학습 효과가 유럽의 에너지 정책을 지배하고 있는 셈입니다.
제재 완화도 동시에 진행됐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산 경유 공급 확대를 위한 제재를 풀고, 그레이엄법의 신규 대러 제재 조항을 60일간 유예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습니다. 동결된 러시아 자산 일부를 미국이 감독하는 특수목적금융법인으로 옮기는 방안도 거론됩니다.
갈라지는 반응, 남은 변수
러시아는 반색했습니다. 푸틴의 경제특사 키릴 드미트리예프는 "마침내 얼음이 깨졌다"고 표현하며 경제 대화 재개에 기대를 드러냈습니다. 반대로 젤렌스키 대통령은 제재 완화가 러시아를 더 대담하게 만들 뿐이라며 비판했고, 미국 내에서도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 일부까지 "푸틴에 굴복하는 처사"라고 맞섰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12월 마이애미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미·러·우크라이나 3자 회담이 성사될 가능성도 언급했습니다. 다만 장소와 형식은 확정되지 않았고 러시아와 미국의 공식 답변도 아직 없습니다. 에너지와 제재, 회담 의제가 한데 얽힌 만큼 협상의 향방은 당분간 유동적일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