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기다리기 지친 중동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를 비롯한 걸프 협력 회의(GCC) 국가들이 한국 방산업체에 잇따라 전화를 걸고 있습니다. 핵심 요청은 단순하면서도 절박합니다. 한국이 자랑하는 중거리 지대공 유도무기 체계인 ‘천궁-II’의 인도 일정을 가능한 한 앞당겨 달라는 겁니다. 일부 국가는 계약된 물량 외에 추가 요격 미사일의 공급까지 타진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는 최근 중동 지역을 뒤흔든 연쇄적인 공격과 충돌 위협 속에서, 미국 중심의 무기 조달 체계에 의존하던 기존 방식에 균열이 생겼음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이런 긴급한 ‘방공 쇼핑’의 배경에는 이란의 위협과 저가 드론의 확산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걸프 국가들은 이란의 직접적인 공격이나 그를 대리하는 무장단체의 드론, 미사일 공격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기존의 고성능 미국산 방공 시스템이 이런 저가·대량의 표적을 상대로는 효율성이 떨어지고, 유지비와 탄약 비용이 엄청나게 든다는 점입니다. 미국의 무기 공급 라인도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해 팽팽하게 조여져 있어, 중동 동맹국들의 즉각적인 재보급 요구를 충족시키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 때문에 사우디는 일본에 패트리엇 미사일 공급을 문의하는 등 전방위로 해결책을 찾는 중입니다.
공급망 다변화가 답이다
‘미국산만 고집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걸프 국가들은 한국을 포함한 다양한 공급처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천궁-II는 이러한 전략적 다변화의 핵심 타겟으로 부상했습니다. 천궁-II는 한국 공군의 주력 방공 무기로, 패트리엇보다는 저렴하면서도 고성능 레이더와 요격 능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즉,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가격에 효과적인 방공 능력을 제공할 수 있는 ‘가성비’ 옵션으로 주목받고 있는 셈입니다. UAE는 이미 한국의 방공 레이더를 도입한 바 있어, 시스템 간 연계성 측면에서도 천궁-II에 대한 신뢰가 있습니다.
다변화의 범위는 한국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우크라이나산 요격 드론이나 영국 스타트업이 개발 중인 저가 미사일 체계 같은 대안들도 함께 검토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와는 방산 협력 협정까지 체결하며, 전장에서 검증된 기술과 경험을 공유하려는 움직임도 보입니다. 이는 단순히 무기를 사는 것을 넘어, 저비용 위협에 특화된 다층적이고 유연한 방공망을 구축하려는 종합적인 전략의 일환으로 읽힙니다.
한국 방산의 기회와 걸림돌
이런 흐름은 한국 방산업계, 특히 천궁-II의 주 개발사인 LIG넥스원에게는 뜻밖의 호재입니다. 실제로 해당 소식이 전해지며 LIG넥스원 주가가 강세를 보이는 등 시장의 기대감이 반영되고 있습니다. 회사는 최근 미국 로봇 기업에 투자하는 등 미래 기술에도 관심을 확대하고 있는데, 본업인 방공 분야에서의 수주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실적에 대한 낙관론이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중동 국가들의 긴급한 요구는 ‘조기 인도’를 전제로 합니다. 이는 생산 라인의 가동률과 물량 조정, 복잡한 수출 통제 절차(예: 미국 기술 포함 여부 검토) 등을 빠른 시간 내에 해결해야 한다는 도전을 의미합니다. 한국 방산 수출의 성공 사례가 많아졌다고 해도, 정치·외교적 상황이 급변하는 중동 시장에서 기대에 부응하는 공급을 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또한, 미국을 비롯한 기존 공급국들의 반응과 지역 내 군사력 균형 변화도 고려해야 할 변수입니다. 한국 정부와 업계는 단순한 판매 차원이 아닌, 장기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어떻게 구축할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필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