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운동회 변웅전 전 의원 별세, 방송과 정치 넘나든 다채로운 발자취

서채조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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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전 수정 · 2025년 11월 25일 오전 2:17

발행: 2025년 11월 24일 오후 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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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80년대 '명랑운동회' 진행자로 국민적 사랑을 받았던 변웅전 전 의원이 85세로 별세했다. KBS 아나운서로 시작해 MBC에서 전성기를 보낸 그는 '유쾌한 청백전', '묘기대행진' 등 인기 프로그램을 진행했으며, 이후 정계에 입문해 3선 국회의원과 자유선진당 대표를 역임하며 방송과 정치 두 분야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한 시대를 풍미한 얼굴의 종막

1970~80년대 '명랑운동회'의 유쾌한 진행자로 국민적 사랑을 받았던 변웅전 전 의원이 85세를 일기로 별세했습니다. 11월 23일 밤 서울 광진구 혜민병원에서 숨을 거둔 고인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5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7일 오전 8시로 예정되었습니다.

변웅전 전 의원은 방송인과 정치인으로서 남다른 족적을 남겼습니다. 1940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심리학과 재학 중이던 1963년 KBS 아나운서로 방송계에 입문했는데요, 입사 초기 방송사고로 인해 지역국으로 발령받는 시련을 겪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경험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전국을 돌며 다양한 공개방송을 진행하며 실력을 쌓았고, 결국 1969년 MBC로 스카우트되면서 본격적인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명랑운동회와 예능의 황금기

MBC로 자리를 옮긴 변웅전 전 의원은 당대 최고의 예능 PD였던 김경태 PD의 발탁으로 '유쾌한 청백전', '묘기대행진', '명랑운동회' 등 시대를 대표하는 인기 프로그램들을 이끌었습니다. 특히 '명랑운동회'는 코미디언들이 출연해 철봉에 매달려 풍선 터트리기, 손 안 대고 떡 먹기 등 다양한 게임을 선보이며 온 가족의 사랑을 받았는데요, 그의 유쾌한 진행과 특유의 너털웃음은 프로그램의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의 방송인으로서의 영향력은 단순한 진행을 넘어 인재 발굴까지 이어졌습니다. '유쾌한 청백전'에서는 고향 후배인 '뽀빠이' 이상용을 연예계에 데뷔시키는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죠. 2011년에는 MBC에서 50년간 아나운서실을 빛낸 선배에게 주는 헌정패를 받으며 방송인으로서의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방송에서 정치로, 새로운 도전

1995년 변웅전 전 의원은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자유민주연합 창당준비위원회 대변인을 맡으며 정계에 입문한 것이죠. 이듬해인 1996년 15대 총선에서 충남 서산·태안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정치인으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16대, 18대에서도 연이어 당선되며 3선 의원으로서 입지를 다졌습니다.

국회의원으로서 그는 18대 국회에서 보건복지가족위원장을 역임하며 국민 건강과 복지 증진을 위한 정책 마련에 힘썼습니다. 2011년에는 자유선진당 대표를 맡아 '야당다운 야당을 하겠다. 작은 만큼 매운 정당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당을 이끌기도 했죠. 방송인 출신 정치인으로서 그는 'DJP 연합'이라는 정치적 용어를 만들어내는 등 독특한 정치 스타일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두 개의 커리어, 하나의 유산

변웅전 전 의원의 삶은 방송과 정치라는 두 개의 영역을 넘나들며 풍성한 이야기를 써내려갔습니다. 아나운서로서는 국민에게 웃음과 즐거움을 선사했고, 정치인으로서는 지역 발전과 국민을 위한 정책 마련에 힘썼는데요, 그의 이러한 다채로운 경력은 한국 방송사와 정치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좌표를 제공합니다.

특히 그는 2008년 유재석과 나경은 아나운서의 결혼식에서 주례를 맡는 등 방송계와의 인연을 꾸준히 이어갔습니다. 방송인으로 쌓은 친근한 이미지와 정치인으로서의 경험을 조화롭게 살려 다양한 분야에서 영향력을 발휘한 것이죠.

고인은 부인 최명숙 씨와 두 아들 변지명, 변지석 씨를 비롯한 가족들을 남겼습니다. 장지는 판교 자하연으로 정해졌으며, 많은 이들이 그의 마지막 길을 애도하며 기억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 시대를 풍미한 그의 유쾌한 웃음소리와 다채로운 발자취는 오랫동안 기억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