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지 않게 올리겠다는 신호등이 켜진 이유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물가 안정을 위해 늦지 않게 금리를 인상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한은 창립 76주년 기념식에서 나온 이 발언은 지난달 금통위 이후 불거진 7월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사실상 기정사실화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최근 2주 동안 세 차례에 걸쳐 긴축 기조를 재차 강조한 만큼, 시장에서는 다음 달 금통위에서의 조치를 거의 확실시하고 있습니다.
이번 금리 인상의 가장 직접적인 배경은 생활물가를 중심으로 한 물가 상승 압력입니다.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1%를 기록하며 2년 넘게 3%대에 진입했고, 중동 전쟁의 영향으로 유가 불안이 이어지면서 물가 상승세가 당분간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졌습니다. 특히 저소득층의 체감 부담이 큰 생활물가가 소비자물가 상승폭을 웃돌고 있어 기대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이 한은의 시급한 판단을 이끌어냈습니다.
물가와 환율이 만들어내는 긴축 명분
글로벌 중앙은행들의 움직임도 한국의 선택을 좁혔습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2년 9개월 만에 정책금리를 올렸고, 일본은행도 인상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입니다. 미국 역시 금리 인하 기대감이 꺾이며 긴축 분위기가 짙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반도체 호황으로 수출이 견조하고 내수 회복세도 이어지고 있어, 한국은행은 경기 부진 우려를 덜고 물가 잡기에 집중할 여건이 마련됐다고 보는 것입니다.
환율 상황도 통화정책의 방향에 무게를 싣고 있습니다.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에서 쉽게 내려오지 않으면서 수입물가 부담이 커지고 있는데요. 신 총재는 경상수지 흑자가 이어지는 만큼 환율이 점차 안정될 것으로 내다봤지만, 중동 사태 등 대외 불확실성이 변수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에 한은은 외환시장 24시간 개장과 역외 원화결제시스템 구축을 통해 시장 접근성을 높이는 중장기 과제도 함께 꺼내 들었습니다.
부채 부담과 인상 속도 사이의 줄다리기
다만 금리 인상이 불가피해지면서 부작용에 대한 걱정도 커지고 있습니다. 수도권 집값 상승과 가계대출 급증이 이어지고 있고, 증시에서는 빚을 내서 투자하는 이른바 빚투가 확대되면서 금융불균형 리스크가 커지고 있습니다. 더욱이 5월 취업자 수가 4만 명 줄어들고 청년 고용 여건이 악화되는 등 고용 시장의 냉기도 엄연한 현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를 올리면 소상공인과 취약계층의 원리금 상환 부담이 한층 가중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부담을 어떻게 줄일 것인지를 두고 신 총재는 통화정책이 아닌 재정정책의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금리는 시장 전체에 무차별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저소득층과 소상공인을 돕는 일은 정부의 선별적 지원이 더 효과적이라는 겁니다. 동시에 한은은 외환시장 구조 개선을 통해 외국인 투자자의 원화시장 접근성을 높이고 시장 안정 기반을 넓혀갈 방침입니다.
시장에서는 7월 인상을 넘어 연내 두 차례의 금리 인상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심지어 7월에 0.50%포인트를 한 번에 올리는 빅스텝이나 7월과 8월 연속 인상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습니다. 물론 한은이 인상 폭과 시기를 결정할 때는 단순히 물가뿐 아니라 가계부채와 금융시장 안정까지 두루 살펴야 합니다. 앞으로 몇 주간의 경제지표와 금통위의 최종 판단에 따라 긴축의 속도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