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조 원이 몰린 불개미의 시간
단일 종목 레버리지 ETF가 국내 증시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지난 5월 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기초자산으로 한 14개 상품이 상장된 이후 약 한 달 반 동안 누적 거래액이 300조 원에 육박했는데요. 특정일에는 코스피 전체 거래대금의 3분의 1이 이들 상품에 집중될 정도로 투기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문제는 이 열기가 수익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출시된 상품 대부분이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고, 최대 손실률은 35.9%에 달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40대와 50대를 중심으로 확산되었습니다.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 상품 투자자 14만 9천 명 가운데 60% 이상이 4050 세대였는데요. 적지 않은 자금력과 도전적 성향이 맞물리며 순자산 16조 원과 맞먹는 15조 7천억 원의 거래 대금이 단 하루에 회전하는 극단적인 시장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습니다.
변동성을 키우는 리밸런싱의 덫
레버리지 ETF의 구조적 특성이 시장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이 상품들은 매일 종가 부근에서 목표 배율을 맞추기 위해 주가가 오르면 사고 내리면 파는 리밸런싱을 반복하는데요. 이른바 '숏 감마' 구조는 변동성이 클수록 시장의 진폭을 확대하는 역할을 합니다. 실제로 6월 한 달간 ETF 괴리율 초과 공시가 800건을 넘었고, 브이코스피 지수는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비슷한 90선까지 치솟았습니다.
여기에 '변동성 드래그'라는 함정이 숨어 있습니다. 기초자산이 등락을 반복하면 일일 리밸런싱 과정에서 수익률이 누적 훼손되는 건데요. 삼성전자 주가가 6.4% 상승한 기간 동안 2배 레버리지 ETF의 누적 수익률은 기대치인 12.8% 대신 1.3%에 그쳤습니다. 이처럼 단기 스캘핑 외에는 기대한 만큼의 수익이 나오지 않는 구조입니다.
심지어 직장인 사이에서는 출근 후 화장실에서 매매하는 이른바 '화캉스'가 유행하며 업무 집중력 저하와 생산성 손실까지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하버드 연구진은 기업 생산성 손실의 93.6%가 집중력 저하에서 기인하며 결근 손실보다 약 15배 크다고 분석했는데요. 주식 자금 쏠림으로 내수 침체가 가속화된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퇴출보다는 규제 다듬기가 현실적
정부와 금융당국은 보완책 마련에 분주합니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국회에서 관련 우려를 인지하고 있으며 보완 방안을 협의 중이라고 밝혔는데요. 다만 상장폐지는 법적 근거가 미약하고, 강제 청산 시 포지션 대거 정리로 오히려 더 큰 시장 충격이 우려된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시각입니다. 안철수 의원 등 정치권의 상장폐지 주장은 현실성이 낮게 평가받고 있습니다.
현실적인 대안으로는 기본 예탁금을 현재 1천만 원에서 대폭 상향하거나 전문 투자자만 거래할 수 있게 차등화하는 방안이 거론됩니다. 또한 운용자산 확대 속도를 늦추기 위한 신규 설정 수수료 인상, 3배 레버리지 도입 금지 등의 규제 강화도 제시되고 있습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주가 가격 제한폭을 폐지해 투자자들이 리스크를 직접 체감하게 하는 금융 치료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한편 주식과 채권을 일정 비율로 유지하는 혼합형 ETF 같은 역추세형 상품을 늘려 시장 완충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어, 정책적 고민이 깊어질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