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목소리는 명확합니다
중소기업 10곳 중 8곳 이상이 법정 정년 연장보다 '선별 재고용'을 선호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86.2%가 직무와 성과, 건강 상태를 고려한 재고용 방식을 택했고, 법정 정년 연장을 지지하는 기업은 13.8%에 그쳤습니다. 이것은 기업 현장의 현실적인 고민이 반영된 선택입니다. 인건비 부담 증가(41.4%)가 가장 큰 걸림돌로 꼽히면서, 기업들은 더 유연한 고용 형태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미 중소기업의 67.8%는 정년퇴직자를 촉탁직으로 재고용하는 제도를 운영 중입니다. 다만 희망자 전원을 재고용하는 기업은 20.9%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직무 적합성과 생산성을 평가해 선별적으로 고용을 연장하고 있습니다. 재고용 시 임금은 정년 시점과 비슷한 수준(75.7%)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지만, 23.3%는 임금을 감액해 지급하고 있습니다.
세대를 넘어선 공감대 형성
정년 연장에 대한 직장인들의 인식도 주목할 만합니다. 리멤버 리서치 조사에서 응답자의 74%가 정년 연장이 필요하다고 답했는데요, 20대(67.9%)와 30대(70.4%)에서도 높은 찬성률을 보였습니다. 이는 정년 연장이 더 이상 특정 세대의 문제가 아닌, 모두의 미래와 직결된 과제임을 보여줍니다.
직장인들이 정년 연장을 원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불안감이었습니다. 노후 생활 안정(39.0%)과 국민연금 수급까지의 소득 공백(17.8%)이 주요 동기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상적인 정년으로는 만 63~65세가 과반의 지지를 받았는데, 이는 현실적인 수준에서의 합의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임금체계 개편이 핵심 과제
국회미래연구원 정혜윤 부연구위원은 정년 연장이 고용 문제뿐 아니라 임금 질서의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우리나라 기업의 임금체계가 연공급과 무체계로 양분되어 있는데, 정년 연장 시 연공급 체계를 유지하는 기업은 인건비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직무가치 기반의 임금체계로 전환해야 연공형 부담을 줄이고 고령자 고용을 촉진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사례가 참고가 됩니다. 일본은 정년 연장과 함께 탈 연공 임금체계 개편을 추진했고, 기업에 정년 폐지, 정년 연장, 계속 고용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습니다. 한국은 1년 미만 근로자와 30년 이상 근로자의 임금 격차가 크기 때문에, 호봉급 제도를 폐지하고 직무와 역할, 난이도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는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청년 고용과의 균형 찾기
정년 연장 논의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청년 고용 문제입니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고령 근로자 1명 증가 시 청년 근로자는 0.4~1.5명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과거 법정 정년 60세 연장 이후에도 이런 현상이 관찰되었는데, 임금피크제 도입만으로는 청년 채용 효과가 미미했습니다.
문제는 정년 연장 논의 테이블에 청년 고용 문제가 제대로 논의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청년유니온은 정년 연장이 청년에게 돌아가야 할 양질의 일자리를 감소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반면 노동계는 정년 연장이 청년 일자리 잠식을 야기한다는 주장에 반박하며, 정년 연장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합의까지의 멀고 먼 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법정정년을 65세까지 단계적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노사 모두 반발하며 연내 입법 목표는 사실상 무산되었습니다. 민주당은 노동계의 압박에 따라 일률적인 65세 정년연장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분위기인 반면, 국민의힘과 경영계는 임금체계 개편과 계속고용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현재 논의는 '20%만의 이야기'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비정규직의 '양질의 일자리' 전환을 통해 고령층의 고용 불안정을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주된 일자리에서 정년퇴직하는 비율은 24.6%에 불과하고, 퇴직 후 다수의 중고령층이 비정규직으로 밀려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중소기업 현장에서 이미 자리를 잡은 '선별 재고용' 방식과 직무급제 도입, 청년 고용 보호를 위한 장치들이 균형 있게 결합될 때만이 진정한 사회적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년 연장이 소수에게 혜택이 집중되는 '그들만의 잔치'가 아니라, 모두가 승자되는 해법을 찾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먼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