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 논란과 '가짜뉴스' 파문, 대한상의 보도자료가 불러온 여진

조한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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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달 전 수정 · 2026년 2월 9일 오후 9:18

발행: 2026년 2월 8일 오후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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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상공회의소가 신뢰성 낮은 외부 통계를 인용해 상속세 부담으로 고액 자산가가 해외로 떠난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하며 '가짜뉴스'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강력 비판과 정부의 감사 지시에 대해 대한상의는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을 발표했으나, 이번 사태는 경제단체의 역할과 상속세 논의의 건전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논란의 시작은 한 장의 보도자료

대한상공회의소가 배포한 한 장의 보도자료가 정계와 재계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지난주 대한상의는 '상속세 부담 때문에 한국의 고액 자산가 2400명이 해외로 떠났다'는 내용의 자료를 배포했는데요. 이 자료는 영국의 한 이민 컨설팅 업체가 작성한 통계를 인용한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이 통계가 링크드인 데이터를 임의로 조합해 만든 추정치일 뿐만 아니라, 원본 자료에는 상속세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대한상의가 상속세와 자산 유출을 자의적으로 연결 지은 셈이죠.

이 보도자료는 이재명 대통령의 강한 비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대통령은 SNS를 통해 "법정 단체가 이런 짓을 벌인다니 믿어지지 않는다"며 '고의적 가짜뉴스'라고 규정했고, 이어 산업통상자원부 김정관 장관이 경제단체들을 긴급 소집해 사과를 요구하는 상황까지 이어졌습니다. 박일준 대한상의 부회장은 고개를 숙여 사과문을 발표했고, 최태원 회장은 내부 검증 시스템 강화를 지시했습니다.

팩트체크, 그리고 맞서는 정부의 숫자

논란이 커지자 국세청이 정확한 숫자를 공개했습니다. 국세청에 따르면, 최근 3년간 해외 이주를 신고한 한국인은 연평균 2904명에 불과했고, 이 중 자산 10억 원 이상은 고작 139명이었습니다. 대한상의가 주장한 2400명과는 17배 이상 차이가 나는 숫자였죠. 재정경제부도 나서서 한국의 상속세 실태를 설명했습니다. 명목상 최고세율은 OECD 국가 중 높은 편이지만, 실제 과세 대상은 전체 피상속인의 5.9%에 불과하고, 10억 원 미만 재산은 대부분 일괄공제로 과세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산업부는 즉각 감사에 착수했고, 김정관 장관은 "법정단체가 신뢰할 수 없는 자료를 사용한 것은 국민과 시장을 혼란에 빠뜨리는 심각한 사안"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대한상의는 팩트체크 담당 임원을 지정하고 외부 전문가 검증 체계를 도입하는 등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았지만, 이미 터진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모양입니다.

가짜뉴스 너머, 남겨진 질문들

이번 사태는 단순한 통계 오류를 넘는 더 큰 질문들을 던집니다. 첫째는 경제단체의 역할에 관한 것이죠. 경제단체는 정부 정책에 대한 '레드팀' 역할을 하며 시장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창구입니다. 그런데 자료 검증 없이 특정 입장을 옹호하는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행위가 과연 건전한 비판 기능인가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과거 문재인 정부 시절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적폐'로 몰려 위축된 전례를 떠올리며, 이번 사태가 경제단체의 목소리를 원천 봉쇄하는 계기가 될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둘째는 상속세 논의의 건전성 문제입니다. 일각에서는 이번 논란이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 부담'이라는 본질적 논의를 가리는 데 이용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실제로 기업인 80%가 가업 승계의 가장 큰 걸림돌로 세금 부담을 꼽을 정도로 현장의 부담은 존재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논의가 검증되지 않은 숫자와 감정적 프레임에 휘둘려 제대로 된 정책 대화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점이죠.

산업부는 이달 말부터 주요 단체와 정례 정책 간담회를 개최해 소통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가짜뉴스' 파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경제 현장의 진짜 목소리를 건설적으로 정책에 반영할 수 있을지에 대한 성찰로 이어져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