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은 쌓였지만, 손은 놀고
버크셔 해서웨이가 사상 최대 규모의 현금을 보유한 채 투자 기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난 1분기 말 기준 약 590조 원(3,974억 달러)에 달하는 이 자금은, 워런 버핏 회장이 물러난 후 처음 맞이한 주주총회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주제였습니다. 그런데 이 막대한 자금이 투자되지 않고 쌓여만 가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워런 버핏은 현재 시장을 '카지노가 딸린 교회'에 비유하며, 초단기 투기 거래가 도박 수준으로 번지고 있다고 날카롭게 비판했습니다. 특히 하루짜리 옵션 거래를 '투자도, 투기도 아닌 순수한 도박'으로 규정하며, 시장이 과열된 도박 심리에 휩싸여 있다고 지적했죠. 버핏은 이런 환경에서 성급한 투자를 하기보다는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을 때'를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버핏의 경고, 에이블의 계획
버핏의 강력한 경고와는 별개로, 버크셔의 새 CEO 그레그 에이블은 차분하게 자신의 전략을 밝혔습니다. 그는 버핏의 가치 투자 철학을 확고히 계승하겠다고 밝혔지만, 동시에 변화의 조짐도 보였습니다. 에이블 CEO는 인공지능(AI) 기술을 기존 사업인 철도(BNSF)나 에너지(BHE)에 접목해 효율성을 높이는 데 적극적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다만, 'AI를 위한 AI'는 만들지 않겠으며, 실질적인 문제 해결에만 활용하겠다는 신중한 태도를 견지했죠. 그의 첫 임기를 장식한 1분기 실적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영업이익이 18% 증가했고, 순이익은 2배 이상 급증했으며, 특히 보험 사업 부문의 호조가 실적을 떠받쳤습니다. 이런 실적은 '포스트 버핏' 시대에 대한 시장의 불안감을 일부 불식시키는 계기가 됐습니다.
인내의 전략, 그리고 미래
그렇다면 버크셔는 언제, 어떻게 쌓아둔 현금을 투자할까요? 에이블 CEO의 답변은 명확했습니다. 그는 시장에 혼란이 찾아올 때를 대비해 매수할 기업 후보 목록을 이미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란 전쟁 등으로 인한 증시 변동성과 같은 위기가 역설적으로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이런 '인내의 전략'은 버크셔가 14분기 연속 주식 순매도를 통해 현금을 축적해 온 행보와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버핏이 객석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에이블은 버크셔의 복합기업 구조를 유지하며 분할 가능성을 일축하는 등 기존 틀을 고수할 의지를 보였습니다. 결국, 버크셔는 거인의 어깨 위에 선 새로운 리더 체제 아래, 여전히 교과서적인 가치 투자의 원칙을 지키며 막대한 자본을 휘두를 '그날'을 기다리고 있는 셈입니다.